중학교 3학년인 A군은 지난해 하루 10~13시간씩 게임에 빠져 살았다. 이혼한 뒤 식당 허드렛일을 하며 홀로 자신을 키우는 어머니가 새벽에 들어올 때까지 하는 일이었다. '혼자 크는 아이'였던 A군은 게임이 유일한 낙이었고 이 때문에 학교를 빼먹는 날이 많았다. 언어지능도 떨어져 초등학생 수준의 언어를 썼고 어머니의 목을 조르는 난폭한 모습까지 보였다. 심각성을 파악한 A군의 담임 교사는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인 서울시립 명지아이윌센터의 '찾아가는 상담소' 문을 두드렸다. 상담사가 학생을 직접 방문ㆍ치료하는 프로그램이다. 상담 2~3회 때 A군이 과거 들고양이 3~4마리를 키웠을 정도로 동물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된 상담사는 관련 책을 사주면서 독서 숙제를 냈다. 독서에 흥미를 붙이자 게임 시간은 저절로 줄어들었다. "게임이 재미있어서 한 건 아니에요.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거죠"라고 말하는 A군은 애완동물 관련 분야로 진로를 정했고 게임도 4시간 이내로 줄였다.
인터넷 게임 중독의 위험은 생계유지에 허덕이는 부모 아래 있는 저소득층 자녀에게 더욱 심각하다. 부모가 시급을 많이 주는 야간에 일하는 동안 방치된 아이들은 쉽게 게임에 빠지고 중독되더라도 치료가 늦어 고위험군이 된다. 행정안전부의 '인터넷중독 실태조사'(2011)에 따르면 월 소득 500만원 이상 계층의 자녀는 중독률이 6.6%였으나 100만원 미만은 11.1%였고, 한부모 가정의 고위험 중독자 비율(7.3%)은 그렇지 않은 가정보다 2배 이상 높았다.
찾아가는 상담소의 대상이 이 같은 저소득층 가정이다. 자녀를 치료센터에 데리고 다닐 여력이 없는 부모에겐 상담사가 찾아오는 것이 치료의 길을 열어주는 중요한 관건이다. 명지아이윌센터 관계자는 "저소득층 가정의 경우 부모보다 교사가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명지아이윌센터에 따르면 2010년 5월부터 현재까지 찾아가는 상담소를 통해 60여명이 치료를 받았지만 호전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일단 고위험군은 만남부터 힘들다. 송인철 명지아이윌센터 연구원은 "기본 12회 상담이 이뤄지는데 대부분 문을 안 열어줘 첫 만남부터 펑크가 나거나, 곧바로 줄행랑을 쳐 1시간 가까이 추격전을 벌이기 일쑤"라고 밝혔다.
상담사의 1차 임무는 학생을 집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다. 온라인 활동에만 익숙해져 밖에서 사람을 만나면 긴장부터 한다. 다음 단계는 물건 사기 연습이다. 주로 서점이나 음식점에서 종업원과 대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최종 목표는 관심사를 만들어주는 것. 송 연구원은 "'게임은 무조건 나쁘다'는 식의 접근은 금물"이라며 "관심사를 찾아주면 무기력했던 학생들이 삶에 의욕을 갖는다"고 조언했다. 게임 실력이 수준급인 B(19)군은 상담 끝에 프로게이머로 진로를 정했고 대회 출전을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2~3년 가까이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B군이 꿈을 위해 집 밖으로 나온 것이다.
청소년 게임중독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면서 치료 프로그램도 다양해졌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02-2250-3000, www.kyci.or.kr)은 고위험군 중고생을 대상으로 11박 12일 동안 합숙 치료하는 '인터넷 레스큐 스쿨'(10만원), 초등학생 대상 2박3일 가족치유캠프(1인 1만5,000원)를 운영 중이다. 저소득층에겐 모두 무료다. 명지아이윌센터(02-300-3962, www.mjiwill.or.kr)는 찾아가는 상담소(무료), 가족상담(가족 2만원), 심리검사(5,000~3만원) 등을 운영한다. 서울시교육청 미래인재교육과 김회경 장학사는 "가정 환경, 학업 부담, 왕따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로 게임에 중독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학생들의 고민에 관심을 갖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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