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시장 논리 등 내세워 기존 순환출자 해소 유보
경제범죄엔 형량 강화 공약
문재인, 3년 내에 순환출자 기존분 해소 못할 때엔 의결권 제한
도입·폐지 반복된 출총제 부활
둘다 중기엔 주로 재정 투입… 대기업엔 규제 강화 중심 대책
당근과 채찍의 균형 요구돼
구체적 재정추계 안 밝혀
정치·경제·사회적 소요비용, 후보들 생각보다 더 필요할 듯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최대의 화두 중 하나인 경제민주화 분야의 경우 박근혜와 문재인 두 후보들의 정책 공약은 크게 ▦재벌개혁 ▦공정거래 강화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확대 등의 세 측면으로 나뉜다. 세부적으로는 두 후보 모두 대기업의 순환출자 개선과 대기업 총수 등의 불법 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 집중 투표제 및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금산분리 강화, 부당 내부거래 및 일감 몰아주기 방지,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개선, 불공정 하도급 질서 개선, 골목상권 보호, 중소 및 중견기업 성장 지원 등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두 후보가 큰 틀에서는 대동소이한 공약들을 내세우고 있으나 세부 정책 수단에서는 차이점이 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에 관한 공약 부분이다. 박 후보는 대기업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 금산분리 강화, 부당 내부거래 및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 강화, 골목 상권 침해 방지, 불공정 하도급 질서 개선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그간 새누리당 안팎에서 논란이 됐던 혁신적 재벌 지배구조 개선 대책에 대해서는 시장논리와 헌법 정신을 들어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예를 들어 박 후보는 중요 경제범죄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하지 않겠다는 입장과 관련, "헌법이 보장한 평등권 침해 논란 등 여러 부작용에 대한 우려를 감안했다"며 "경제범죄 형량 강화로 해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논란이 됐던 대기업집단법도 중장기 과제로 검토하기로 했다.
반면 문 후보는 재벌 개혁 부문에서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모습이다. 문 후보는 순환출자 기존분 3년 이내 미 해소 시 해당 출자분의 의결권 제한, 지주회사의 부채비율 상한을 200%에서 100%로 하향 조정, 10대 대기업 집단에 대해 순자산의 30%까지 출자총액제한제도 재도입 등을 약속했다. 또 편법 상속·증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지주회사의 행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두 후보가 제시한 세부 과제는 실현 가능성 차원에서 차이가 있다. 박 후보는 막대한 자본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 해소에는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문 후보는 이미 여러 차례 도입과 폐지가 반복됐던 출총제 부활 문제를 다시 들고 나왔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또 두 후보는 경제민주화의 주요 내용이 대주주의 사익추구 행위,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 남용행위, 담합을 통한 경제력 남용 행위 등을 억제함으로써 공정거래질서를 확립ㆍ강화하는 것이라는 기본적인 인식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면서 부당 내부거래 및 일감 몰아주기 방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 불공정 하도급 질서 개선을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도입, 대형유통업체-납품·입점업체 간의 불공정 행위 근절,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상권 진입규제 등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위한 폭 넓은 제도적 장치의 도입을 약속하고 있다.
다만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등 일부 공약들은 사법부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일 뿐만 아니라 많은 중소기업들의 대기업에 대한 높은 사업 의존도를 고려할 때 지속 가능성 차원에서 비현실적 공약이라는 지적이 있다.
박 후보의 경우 하도급 불공정 특약에 따른 중소사업자 피해 방지와 소비자 보호기금 설립 및 소비자 피해구제 명령제 도입을 제안한 점이 특징이다. 문 후보의 경우 납품단가 변동 등 하도급 거래 주요 정보의 공정위 보고 의무화, 원자재 가격-납품단가 연동제, 대기업-협력사 간 이익 공유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공시제도 도입을 약속했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 살리기 및 미래신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두 후보 모두 제조 및 서비스업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 제도를 법제화 하겠다고 밝혔으며 중소기업 전담 부서 설치 등 중소 및 중견기업의 성장과 사업에 실패한 기업인들의 패자부활제도 강화를 위한 공약들을 제시했다.
융복합산업 진흥을 통한 새로운 성장 로드맵을 제시하고 있는 박 후보는 국가미래전략 센터를 설립하고 정보·통신·방송 관련 정책기능을 통합 관장할 전담 부처의 설치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문 후보의 경우 소기업 및 소상공인제품 우선 구매제도 도입 및 공제 지원 확대를 약속했으며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육성을 통한 사회적 경제 모델을 제안했다. 또한 문 후보는 우리나라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서 남북경제연합?내세웠다.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 등의 육성과 관련, 두 후보 모두 유사한 세부목표를 제시했으나 문 후보의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정거래 관행을 확보하기 위한 규제에 좀 더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박 후보는 해외진출 등 벤처 및 중소·중견기업의 글로벌 전문기업화를 위한 진흥을 강조했다.
경제민주화는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 공정거래질서의 확립, 중소기업 살리기라는 삼박자가 잘 맞아야 실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두 후보가 제시한 정책 이슈들과 그 세부 과제들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 하다.
다만 일부 정책공약들의 정치적, 재정적, 법률적, 행정적 측면에서의 실현 가능성은 계속 논란이 될 전망이다. 예를 들어 대기업의 경우 지배구조 개선이나 공정거래 관행 확립을 통해 상당 부분 사회적 논란이 되는 문제들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문제에 들어가면 기존에 정부가 이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제공한 각종 특혜적 지원, 다시 말해 값싼 산업용 전기요금, 세제혜택, 연구개발 보조금, 고환율 정책과 저금리 등을 거둬들이거나 합리화 시키지 않고서는 해결하기 어렵다.
또 대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 경제 및 무역구조 아래에서는 정부가 중소·중견기업에 아무리 많은 혜택을 제공하더라도 이는 다시 복잡한 하청-재하청 사슬을 통해 고스란히 대기업에게 혜택을 주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도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으로 인해 오히려 대기업이 납품대금의 현금 결제를 회피하거나 어음으로 결제하는 관행을 강화시켜왔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편 두 후보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소기업 문제는 주로 정부재정으로, 대기업 문제는 주로 규제강화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에게 당근(재정)과 채찍(규제)의 조화로운 균형이 요구된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모자람이 있으면 시장 질서를 왜곡시키는 결과로 작용한다. 그리고 정부 재정을 확대하고 규제를 강화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큰 정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두 후보의 정책공약을 수행하는데 소요되는 예산을 추정해보면, 중소기업 지원에 가장 많은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며 상대적으로 문 후보의 공약 수행에 많은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두 후보 모두 각 핵심 과제 및 세부 과제의 집행에 필요한 구체적인 재정추계를 밝히지 않거나 단순히 법률을 제·개정하여 규제를 도입하는 문제이므로 추가적인 재원조달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재벌지배구조 개선, 공정거래질서 확립, 그리고 대기업-중소기업 상생과 관련해 여러 법제도의 신설 및 정비에 따르는 규제순응비용(regulatory compliance cost)을 고려할 때 두 후보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정치적·경제적·사회적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체로 문 후보가 박 후보에 비해 더 많은 공약과 구체적인 수단을 제시했다. 정책의지 측면에서는 박 후보와 문 후보가 모두 우수하다는 판정을 받았으나 공약의 적절성 측면에서는 문 후보가 상대적으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제시된 공약의 실현가능성은 박 후보가 높을 것으로 판단된다.
대표 집필 :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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