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 시리즈로 알려진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의 신작 (The Casual Vacancy)가 국내 출간됐다. 신작은 성인독자를 대상으로 한 첫 순소설이다. '동시대 영국 소설 중에서도 단연 감명 깊은 작품'(타임), '정통 문학으로 제대로 다루기 위해 필요한 깊이와 공감, 뉘앙스 등을 결여했다'(로스앤젤레스타임스)등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제목인 '캐주얼 베이컨시'는 의회 회기 중 발생하는 공석을 가리키는 용어. 소설은 '패그포드'라는 가상 시골마을의 자치의원 배리 페어브라더의 죽음에서 시작된다. 40대 초반 배리가 뇌출혈로 급사하자, 마을은 충격에 휩싸인다. 목가적인 분위기의 이 마을은 겉으로 평온해 보이지만, 이면에는 자치의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사람들의 욕망과 이기심으로 얼룩져 있다.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신세대와 기성세대, 아내와 남편,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적으로 여기며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각 계층은 자신들만의 정당한 이유로 차기 의원을 지원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적 유대는 서서히 무너져 간다.
전체적인 인상은 영국 출간 직후 일간지 가디언의 평처럼, '머글'(인간) 세상의 진부한 이야기를 잘 표현하기는 했지만 전세계적 관심을 받을 만한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롤링은 판타지 코드를 신작에서 완전히 털어내고 정공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 흔한 '마술적 리얼리즘' 요소도 없이 빠르게 사건을 전개하며 인간 내면의 모순을 하나하나 까발린다. 마약에 빠진 엄마와 열여섯 살 딸 크리스털, 강박증 교감선생 아버지와 반항아 아들 패츠, 폭행과 폭언을 일삼는 인쇄소 직원 아버지와 자유를 꿈꾸는 아들 앤드루 등 소설에 등장하는 인간군상은 각자 다른 환경이지만, 자신의 사회적 위치에 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배리의 죽음으로 이들은 서로 악당, 희생자, 아군, 배신자로 변한다. 작가는 이들의 일상을 통해 권력자의 이기주의로 타락하는 사회를 잔인하게 묘사한다. 이 과정에서 음주, 마약 중독자의 출산, 10대의 성행위 등을 여과 없이 등장시킨다. 번역자 김선형 씨는 "롤링에 대한 기대를 뒤엎는 작품이라서 해외 평단에서 극과 극의 반응이 나온 것 같다. 기존 롤링의 독자를 끌어들이긴 어렵겠지만, 흡입력이 굉장한 작품이다. 토니 모리슨, 마거릿 애트우드 등과 견주어 빠지지 않는 필력이다"고 평했다.
영국 발간 당시 100만부의 선주문이 들어온 이 작품은 '해리포터' 시리즈를 펴낸 문학수첩이 100만 달러(약 11억1,000만 원)를 웃도는 판권료를 지불하고 국내 출판권을 확보했다. 독일 프랑스에서 발간됐고, 일본 중국 등 43개 국어로 번역, 발간될 예정이다. 502쪽의 영문판을 우리말로 옮기며 2권으로 나뉘어 발간됐다. 신주현 문학수첩 팀장은 "선주문만 6만 5,000질이 들어왔다"며 기대를 표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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