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온 지 4년이 다 되어가지만 어슬렁어슬렁 발이 가는 대로 걷다 보면 매번 길을 잃고 만다. 동사무소 옆의 해광이불집. 그 옆의 한미세탁소. 그 다음부터 골목들은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얽히면서 미로가 된다.
방향감각은 금세 사라진다. 저쪽에 큰 길로 통하는 출구가 있을 것 같지만 골목 끝에는 칠이 벗겨진 대문이 있다. 이쪽으로 가면 먼젓번에 눈여겨보았던 떡집이 있을 것 같은데, 오랜 물건들이 빼곡히 쌓인 전파사가 있다. 골목은 길이라기보다는 집과 가게들로 둘러싸인 또 하나의 내부 같다. 열려있는 채로 은밀함을 간직한 기묘한 장소랄까. 다이달로스가 만들었다는 그리스 신화의 미궁도 어쩌면 이런 골목이었을지 모른다.
골목에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는 건물들도 제법 있지만, 오래된 집들이 훨씬 더 많다. 낮은 담장 끝까지 경사면이 이어지는 슬레이트 지붕. 검은 기와를 얹은 70년대식 개량한옥. 자투리 공간을 이용해 지어진 가파른 삼각꼴의 이층집. '니 똥구녁에서는 오줌이 나오고 고추에서는 똥이 나온다'는 담벼락의 삐뚤빼뚤한 낙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어느 대문 앞에 서서 나는 잠깐 초인종을 누르고 집으로 도망을 가고 싶어진다. 정겨운 충동이다. 하지만 나는 이 골목에 살지 않는다. 내가 사는 곳은 골목 근처, 재개발사업으로 낡은 집들이 철거된 자리에 세워진 아파트다. 나는 골목의 외부인이고, 아파트에서는 누구도 그런 충동을 느끼지 않는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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