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별이 빛나는 밤' 소용돌이, 난류 물리법칙에 딱 맞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 소용돌이, 난류 물리법칙에 딱 맞아

입력
2012.11.25 17:32
0 0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그림은 미술계뿐만 아니라 과학계에서도 관심 대상이었다. 반 고흐가 노란색을 즐겨 사용한 배경과 변색의 이유, '해바라기'가 국화처럼 보이는 까닭, 별과 달의 비밀 등에 대해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추적하고 연구결과를 밝혀 '반 고흐 과학(Science of Gogh)'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림을 분석해 식물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유전자가 밝혀졌고, 입자물리학 연구에 쓰는 가속기가 반 고흐 그림의 진위(眞僞) 여부를 확인하는 데 동원되기도 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내년 3월 24일까지 열리는 '불멸의 화가 Ⅱ:반 고흐 in 파리'전을 계기로 그 속에 숨겨진 과학을 들춰본다.

상징색 노랑에 담긴 과학

반 고흐 하면 떠오르는 색채는 노란색이다. 강렬한 색채의 '15송이 해바라기'를 비롯, '노란 집', '카페테라스의 밤 풍경', '별이 빛나는 밤' 등 그의 대표작에는 예외 없이 노란색이 돋보인다. 1880년대 네덜란드에서 프랑스로 간 뒤 크롬산염으로 된 유황도료를 사용해 밝은 노란색으로 희망을 표현했다.

그런데 이 선명한 노란색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다. 반 고흐 등 19세기 화가들이 많이 사용한 노란색 물감은 시간이 흐르면 안료 속 화학성분인 크롬이 산화되면서 색상이 흐려지거나 어두워진다. 벨기에 앤프워프대 코엔 얀센스 박사팀은 지난 14일 미국 '분석화학지(Analytical Chemistry)'를 통해 "고감도 X선으로 반 고흐 작품을 촬영한 결과, 당시 사용한 유성물감이 태양광과 화학반응을 일으켜 변색되고 있음을 알아냈다"며 "특정 파장의 빛을 피하면 반 고흐 그림에서 색상이 흐려지는 것을 상당히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의학자들은 반 고흐 그림을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가 유독 노란색을 많이 사용한 것은 시신경이 손상돼 사물을 노랗게 보는 황시증(黃視症)을 앓았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의학자들은 그가 평소 즐겨 마시던 '압생트(Absente)'라는 술이 원인일 것으로 보고 있다. 약쑥을 증류해 만든 이 술에는 시신경을 손상하는 물질이 많이 포함돼 있다.

돌연변이 종으로 밝혀진 해바라기

1888년 작 '해바라기'는 그에게'태양의 화가'라는 호칭을 안겨준 대표작이다. 그런데 관찰력이 뛰어나다면 그림을 보면서 궁금증이 생길 것이다. 보통 해바라기라고 하면 노란 꽃잎 가운데 까만 씨앗이 촘촘히 박힌 모습이 떠오르는데, 고흐의 해바라기의 절반 가량에서 꽃잎이 타버려 영락없이 국화처럼 보인다.

반 고흐가 해바라기의 모습을 상상해서 그린 것일까? 미국 조지아대 식물생물학부 존 버크 교수팀은 "고흐가 그린 국화 모양의 해바라기는 흔히 볼 수 있는 야생 해바라기의 돌연변이"라고 '미국공공과학도서관 유전학지(PLoS Gentics)'에서 밝혔다.

국화 모양의 돌연변이 해바라기는 까만 관상화 부분이 거의 없어 꽃가루를 만들어내지 못해 번식하지 못한다. 버크 교수팀은 야생 해바라기와 관상화 부분이 일부 남아 있는 국화 모양의 해바라기(겹해바리기)를 교배해 까만 관상화 부분이 하나도 없는 완전한 국화 모양의 해바라기를 얻어내고, 그 과정에서 'HaCYC2c'라는 유전자가 꽃 모양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과학 발달이 반 고흐 작품을 빛낸 경우도 있다. 네덜란드 크륄러 뮐러 박물관이 소장한 정물화가 위작 시비에 휘말렸다. 꽃이 지나치게 많고 화려해 그의 화풍과 맞지 않는다고 여긴 박물관은 2003년부터 이 작품을 위작으로 판단했다.

그러던 중 네덜란드 델프트대와 벨기에 앤트워프대 공동 연구진이 가속기로 강한 에너지 입자를 쏘아 물감 입자와의 반응형태를 분석해 정물화에 쓰인 물감이 모두 반 고흐 활동 당시 물감임을 알아냈다. 또한 물감을 칠한 형태를 분석해 고유의 붓터치 기법임을 확인했다.

'한밤의 하얀 집'별은 금성

과학자들의 고흐 사랑은 천문학 분야로도 이어졌다. 대표적 인물이 미국 사우스웨스트 텍사스 주립대 도널드 올슨 교수. 그는 2000년 고흐의 '한밤의 하얀 집'에 나오는 프랑스 파리 서북쪽의 작은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를 찾아가 샅샅이 뒤져 그림 속 집을 찾아냈다. 그리고 거기에서 며칠 밤에 걸쳐 하늘을 관찰해 그림에 나온 커다란 별이 금성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올슨 교수는 2003년에도 같은 방법으로 그가 그린 '월출'에 나오는 둥근 천체가 달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이 그림은 한때 '일출'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달이 뜬 위치와 그린 시기 등을 분석한 결과, 1889년 7월 13일 밤 9시 8분에 떠오른 보름달을 그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밖에'별이 빛나는 밤'에 나오는 소용돌이가 난류(亂流)를 설명하는 물리법칙에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논문이 '네이처'에 게재되기도 했다. 과학자들의 반 고흐에 대한 관심이 새로운 '고흐 과학'으로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