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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영의 덧차원 일기장] 어떤 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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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영의 덧차원 일기장] 어떤 젊은이

입력
2012.11.2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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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위해, 고명하신 교수님께 감히 이렇게 호소할 수 밖에 없는 아비의 심정을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이 문제를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계신 모든 분들은 제 아들이 학문을 대단히 좋아하며 근면할뿐더러 과학에 큰 애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귀하께 확실히 보증할 수 있습니다. 제 아들은 보잘것없는 저희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에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 아들이 생활과 일에서 기쁨을 되찾을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셨으면 합니다. 만약 제 아들이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실 수만 있다면 더없이 고맙겠습니다."

아들을 걱정하고 부탁하는 이 편지에 대한 답장은 오지 않았다. 이 아들은 그 전해에 명문 대학을 졸업했으나 거의 1년간 일자리도 없이 지내고 난 뒤였다. 사실 대학 생활이 불성실했고 교수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아서 졸업 시험 성적은 꼴찌였다. 조교직을 얻으려고 보낸 모든 편지는 거절당했고, 원하는 직업을 얻을 길이 완전히 막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절망적인 날을 보내고 있었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 아들은 대학동창과 사랑에 빠져 있었는데, 집안에서 반대하고 자신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바람에 같이 살지 못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두 연인에게는 아이까지 생겨서, 임신의 와중에 졸업시험을 치러야 했던 여자친구는 결국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학위를 받지 못했다. 태어난 아이는 딸이었는데, 아주 어릴 때 병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과외 교사를 전전하던 그는 대학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를 포기하고 중등교사가 되려 했지만 역시 여의치 않아 단기 계약직 자리를 얻는데 그쳤다. 보험회사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그는 친구들에게 여기 저기 일자리를 부탁하고, 지원했다 떨어지는 일을 반복하는 고단한 나날을 몇 년 동안 보내야 했다. 한 마디로 참으로 한심한 지경의 젊은이였다.

이 젊은이는 1999년 12월 31일 미국의 타임지 표지에 등장한다. 그의 사진 위에 적힌 타이틀은 "세기의 인물"이었다. 눈치를 챈 사람도 있겠지만 이 젊은이는 바로 20대 초반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아인슈타인은 힘든 시기를 지낸 후 친구의 연줄로 스위스 연방 특허청에 취직해서 결혼을 하고 인생에 안정을 찾게 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는 맹렬하고도 진지하게 과학 연구를 하기 시작했고, 별다른 경험이나 배경이 없음에도 학술지에 전문적인 논문을 싣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의 삶은 현기증 나는 궤적을 그린다. 불과 3년 후, 그는 역사에 길이 남을 논문 세 편을 한 해에 잇달아 발표하면서 일약 물리학계의 총아가 된다. 실업자 시절에서 11년이 지난 후 그는 당시 세계 과학의 중심 도시에 전례가 없는 파격적인 대우로 초빙된다. 그는 프로이센 과학 아카데미의 최연소 회원이며, 뭐든지 강의할 권리는 있으되 강의의 의무는 전혀 없는 꿈같은 조건의 베를린 대학의 교수고, 현재 독일 과학의 중심 역할을 하는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전신인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 산하에 설립된 그 자신의 개인 물리학 연구소 소장으로서, 프로이센의 교수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 봉급을 받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6년 후에는 영국의 원정대가 일식을 이용해서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증명하면서 아인슈타인은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 된다.

아인슈타인의 연구 활동이나 업적, 그리고 그의 삶의 진행은 너무나 예외적이어서, 힘든 시절을 보내는 청춘들에게 아인슈타인을 보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또한 아인슈타인의 예에서 분명한 것은, 누군가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보내더라도, 아무리 찌질한 모습으로 한심한 지경에 처하더라도, 아무리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의 가치를 정해버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상대 물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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