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막정식을 시켰다. 동행인 친구의 고향은 서울, 내 고향은 강원도니 둘 다 그다지 꼬막과 친한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꼬막 철이고 우리는 벌교에 놀러 왔으니까.
잠시 후 플라스틱 접시에 수북이 삶은 꼬막이 나왔다. 나는 잠시 난감해진다. 삶은 건 분명한데, 하나같이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엄마에게 전수받은 기술로 나는 일 년에 한두 번쯤 마음이 내키면 꼬막을 삶는다. 입을 쫙 벌릴 때까지 물을 팔팔 끓이고, 벌어진 껍질 사이로 드러난 살 위에 간장양념을 얹어서 먹는다. 그런데 이렇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어쩌라는 거람? 손톱 끝을 들이밀어 열어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다섯 개 중 하나가 간신히 벌어질까 말까다.
종내는 보다 못한 주인아주머니가 끼어드셨다. 음식을 내주고 옆 테이블에 앉아 TV를 보고 계시다가 한심하다는 듯 한 말씀 하신다. "아 꼬막은 똥구멍으로 숟가락을 따는 거랑께!" 아주머니와 우리는 마주보며 눈을 두 번쯤 깜빡였고,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숟가락으로 똥구멍을!" 아주머니가 말을 고쳤다. 그래도 웃음은 멈추어지지 않는다. 똥구멍으로 숟가락을 따든 숟가락으로 똥구멍을 따든 말 자체가 그냥 꼬막스럽달까.
아주머니가 보여주는 시범을 따라 엄지와 검지로 숟가락 머리를 틀어 잡고 꼬막 똥구멍을 비틀어 보았다. 쉽다. 다물려 있던 껍데기 안에는 조갯살과 함께 짭조름하고 비릿한 바다의 맛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남도의 맛이었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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