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코너~ 스물 아홉살, 72.4㎏~ 21전 20승 9KO 1패~ 카불 출신 평화의 파이터! 하미~드 라히미~!!"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에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10월 30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로야 지르가 홀. 평소 국가원로들의 회의장소로 사용되는 곳이다. 그러나 오늘은 복싱 경기를 위한 링이 설치됐다. 복싱 경기에선 긴장감이 감돌기 마련이지만 이날 경기장은 관중의 기대감으로 가득찼다.
"땡!" 공이 울렸다. 역사상 처음 아프간 땅에서 프로복싱 경기가 시작된 순간이다. 구색맞추기 친선전이 아니라 세계복싱기구(WBO) 미들급 대륙간 챔피언이 걸린 어엿한 타이틀 매치다.
경기는 아프간 전역 31개주로 방송돼 수백만명이 TV로 지켜 봤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경기에 외신도 큰 관심을 보였다. 그간 아프간발 뉴스는 '폭탄이 터져 사람이 죽었다' '탈레반이 득세했다' '미군이 공격받았다'는 등의 사건ㆍ사고 일색이었다. 아프간발 기사가 비극적이지 않다는 자체가 희귀한 일이다.
이날의 작은 기적이 가능했던 것은 아프간 출신 첫 복싱 세계챔피언 하미드 라히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카불에서 태어났지만 1991년 전쟁을 피해 독일로 피난간 소년은 21년 만에 챔프가 되어 금의환향했다. 영아 생존율 세계 최하위, 어머니가 살기 좋은 나라 최하위, 1인당 소득 217위… 어떤 분야든 세계 순위를 매기면 어김없이 최하위권을 맴도는 아프간이 마침내 좋은 쪽에서 세계 1위를 배출한 것이다.
라히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에 따르면 이민 초기 소년 라히미는 타향살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았다. 걸핏하면 싸움질을 했고 급기야 17세 때 교도소에 갔다. 그곳에서 폴란드 이민자 출신 복싱영웅 다리우츠 미할제브스키(44)의 경기를 보고 감명받았다. 싸움에 소질이 있었던 라히미는 복싱을 시작, 2006년 프로에 데뷔해 16연승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2월엔 세계복싱연합(WBU) 타이틀을 획득했다.
세계 최빈국이 낳은 세계 최강자 라히미는 챔피언이 되자 조국을 떠올렸다. 1년에 3,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전장에서 숨지는 저주받은 땅, 과거의 자신처럼 열등감에 사로잡혀 살던 소년들에게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소년들이 침대맡에 무자헤딘(이슬람 전사) 사진 대신 운동선수 사진을 걸어두는 걸 보고 싶어요." 아프간에서 첫 복싱 경기를 추진하게 된 동기다.
라히미는 이 경기에서 사이드 음벨와(탄자니아)를 7회 TKO로 잡고 조국에 승리를 바쳤다. 그리고 국민 영웅이 됐다. 라히미는 다시 독일로 돌아갔지만 그가 뿌린 희망과 평화의 씨앗이 결실을 맺는다면 아프간 소년들은 테러리스트 대신 그의 뒤를 잇는 복서가 될 것이다. 그러면 아프간은 지금보다 더 평화로운 나라가 될 것이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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