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와의 불륜스캔들로 낙마한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일탈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평생을 야전 복무에 바친 반듯한 군인이 가정을 버렸다는 것이 놀랍다. 출세가도를 달려 온 전쟁 영웅의 한 순간 몰락에서 권력무상을 느낀다. 일부 미국 언론은 퍼트레이어스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이후 최고 군인"이라고 평가하며 그런 영웅이 이런 어이없는 사건으로 불명예 퇴진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언론이 추켜세운 최고의 군인상이자 2차대전, 유럽전쟁을 승리로 이끈 아이젠하워는 불륜남 퍼트레이어스와 달리 일탈과 거리가 멀었던 인물이었을까. 또 아이젠하워의 지구 반대편에서 태평양 전쟁을 지휘한 또 다른 전쟁영웅 더글러스 맥아더의 사생활은 어땠을까.
군사분야 저술가 마크 페리가 최근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기고한 '4성 장군의 자아'를 보면 미군 전사(戰史)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전쟁영웅 상당수는 사적 영역에서 알려지지 않은 성격적 결함을 드러냈고, 불륜 등의 일탈 행위로 화려한 전공에 오점을 남겼다.
페리에 따르면 미국 역사에서 불세출의 전쟁 영웅이 인간적 결함을 고스란히 노출한 사례는 미국의 국부로 불리는 조지 워싱턴(1732~1799)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독립군 사령관 시절 워싱턴은 자기 입맛에 맞는 무능한 부하들만 중용했고, 불같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등 지나치게 예민한 성격으로 악명이 높았다. 역사가 존 펄링은 이런 워싱턴이 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기적에 가까웠던 일"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둘로 갈라졌던 남북전쟁(1861~1865년) 당시 북군의 승리를 이끌고 후에 대통령까지 된 율리시스 그랜트(1822~1885) 역시 숱한 결함을 노출했다. 소심했던 워싱턴과 달리 그랜트는 승리를 위해 부하들을 사지에 밀어넣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술에 탐닉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1869년 대통령 취임식 당일에도 만취 상태였다.
그랜트의 맞수이자 남ㆍ북군 통틀어 최고 지휘관으로 꼽히는 남군 사령관 로버트 리(1807~1870)는 독선이 문제였다. 버지니아에서 태어난 리는 유능한 장교를 배제하고 동향 출신을 중용했다. 명예를 중시했던 그는 남북전쟁의 전환점으로 평가받는 게티스버그 전투(1863년 7월)에서 공격과 방어를 병행하자는 제임스 롱스트리트 군단장의 건의를 묵살하고 돌격전을 강행하다 패배를 맛봤다.
미국이 군사 최강국으로 군림한 20세기의 영웅들 역시 이런 결함 혹은 일탈에서 예외일 수 없다. 미군 역사상 네 명밖에 없었던 5성장군(원수) 반열에 올랐던 맥아더(1880~1964). 그는 1,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을 거치며 최고 무공훈장인 명예훈장(메달오브아너)과 일곱 차례의 은성 무공훈장을 받은 영웅이다. 하지만 사생활은 영웅적 면모와 거리가 멀었다. 그는 육군참모총장 시절(1930~1935년) 필리핀에서 데려 온 10대 소녀 이사벨 로사리오 쿠퍼와 사귀었다. 점심시간마다 이사벨의 집을 방문해 선물 공세를 퍼부었다. 사석에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을 "약골"로 부르고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을 "백악관의 불구자"라 비난하는 등 불충도 서슴지 않았다.
나치의 위협에서 유럽을 구한 아이젠하워(1890~1969)는 전쟁터에 아예 애첩을 대동하고 다녔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의 애인인 영국군 수송대의 케이 서머스비 대위는 전쟁 동안 아이젠하워의 운전수 겸 비서로 일하며 그와 성적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아이젠하워는 본처와 이혼하고 서머스비와 결혼하기 위해 귀국하려 했으나 조지 마셜(1880~1959)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만류로 뜻을 접었다. 기갑전의 대가 조지 패튼(1885~1945)은 흑인 병사를 두고 "유색인종 병사들은 생각을 빨리 하지 못한다"며 인종주의적 시각을 드러냈고, 전쟁 동안 미 육군 전체를 지휘한 마셜은 능력은 탁월했으나 따뜻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냉혈한이었다.
선배 영웅들이 남긴 '음지의 역사'를 핑계삼아 퍼트레이어스의 비행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그러나 그가 전장(戰場)에서 이룬 성취와 개인적 과실(過失)은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페리는 "신전에 모셔진 미국 장군들은 모두 결함이 많은 야망과 자아를 가졌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전쟁 영웅이기 이전에 권력으로부터의 숱한 유혹에 시달려야 했던 인간이라는 것이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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