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의 복직 결정. 그간의 복직투쟁과 투옥으로 점철된 신고의 세월을 떠올리면 흥분해 있을 만도 했지만 철탑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차분하기만 했다. 또 다른 긴 싸움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 듯 했다. 현대차 사내하청 해고 노동자인 최병승(36ㆍ사진)씨 얘기다. 최씨는 지난달 17일 동료인 천의봉(31) 현대차 비정규지회 사무장과 함께 현대차 울산공장 3공장 인근 송전탑에 올라 지상 20m 지점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최씨는 "대법원 결정에 따라 사측은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며 농성을 풀 뜻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현장의 뜨거운 쟁점인'불법파견 문제'를 상징하는 인물. 고등학교 시절부터 노동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최씨는 대학(수원대 통계학과)을 중퇴하고 2002년 3월 현대차의 의장(조립)공정을 담당하는 사내하청인 예성기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2003년 만들어진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활동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2005년 3월 해고되면서 긴 싸움은 시작됐다.
22일 특별노사교섭에서 현대차가 처음으로"최씨를 현대차의 정규직으로 복직시키겠다"고 밝히기까지 최씨의 7년 세월은 사측을 상대로 한 현장투쟁과 구속, 법정투쟁의 연속이었다. 그 동안 '별'도 두 개나 달았다. 사내하청노조의 파업을 주동했다는 이유로 2006년 구속(2개월), 현대미포조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농성을 지원하다가 2009년부터 11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노동위원회와 각급 법원에서 판결이 엇갈리던 그의 부당해고 구제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2010년 7월 "사내하청 노동자이지만 최씨가 현대차의 지휘감독 하에 2년 이상 파견노동을 만큼,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노동자로 봐야 한다"고 판결하며 투쟁은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를 따르지 않고 소송을 계속했고, 최씨는 그 해 현대차를 상대로 현장투쟁을 재개, 지금도 경찰 수배자 명단에 올라있다.
최씨를 비롯한 160여명이 넘는 해고자를 낳은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오랜 싸움 끝에 지난 8월 현대차도 사내하청노동자 8,000명(회사 주장 6,800명)중 3,000명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하겠다고 제안했다. 일각에서는 "현대차의'통 큰 결정'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왜 받아들이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하지만, 그는 회사측의 '꼼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최씨는 "2004년 노동부가 현대차 울산공장 전체를 불법파견 공정으로 판정했다"며 "유사동종 공정에서 일한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동일한 잣대를 적용, 현대차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대차는 여전히 대법원 판결은 최씨 한 명에게만 국한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각 지방노동위원회에서도 지난해부터 울산, 아산, 전주공장 해고노동자 37명을 복직시키라는 결정을 잇따라 내리고 있지만 현대차는 13억원의 이행강제금만 낸 채 법적 다툼을 계속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고공농성중인 최씨는 요즘 하루 20~30통의 격려문자를 받으면서 농성생활의 어려움을 달래고 있다. 사내하청 문제를 남의 문제로 생각하는 정규직에 대한 불만은 없느냐고 묻자 그는 "요즘 현대차에는 아버지가 정규직이고 아들이 사내하청인 경우도 많다"며 "모든 정규직의 생각이 같지는 않겠지만, 사내하청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여기고 격려해주는 정규직들에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최씨는 복직 시기와 관련, "현재 노조가 저의 복직문제를 비롯해 정규직 채용규모와 채용방법 등을 포괄적으로 교섭하고 있다"며 "노조의 결정에 따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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