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부족, 화석연료 고갈, 토양ㆍ대기 오염…. 환경론자들의 경고가 정말 현실화한다면 지구가 맞이할 재앙은, 저 가운데 단 하나만으로도 파국적일 것이다. 과장이라 믿고 싶지만, 징후가 이미 나타나고 있고 재앙 역시 사실상 시작됐다는 주장도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거기에 음식 문제를 보탠다. 더 근원적으로는 인류가 땅을 다루는 방식의 반성적 변화 없이는 파국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풍요와 결핍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현실에서 사태를 책임질 주체는 대개 풍요의 수혜자다. 해서 식량 문제 역시 다른 재앙적 문제들처럼 쉽게 체감하기도 해법을 찾아 실천하기도 어렵다. 당장 한국 사회만 해도 음식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질의 문제,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선호의 문제다. 이 책의 저자들은 그런 인식이 무책임한 인식 혹은 무지의 낙관이라고 지적한다.
무지의 낙관을 떠받치는, 언뜻 자명해 보이는 세 가지 가정이 있다. 그 처음이 '땅은 비옥하다'는 것이다. 농경이 시작된 이래 인류는 지력을 약탈해 인류를 먹여 살렸다. 20세기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한 농업 기술, 예컨대 화학비료나 유전자 조작 등은 '엉터리 신기술'일 뿐, 지력의 약탈과 땅의 훼손은 더욱 극심해졌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농업은 자연에 폭력을 행사하는데, 우리가 항상 손에 충분한 반창고를 들고 있을 것인가?"
두 번째 가정은 '앞으로도 날씨가 지금처럼 좋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 날씨의 변덕으로 인류가 고통을 겪은 예는 흔하다. 가뭄으로 식량이 부족해서 수십 만,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사태가 21세기에 발생한다면, 그래서 식량가격이 폭등하고 식량이 무기화하면 지구의 생존 시스템은 마비될 것이다. 농산물 가격이 공황 수준으로 폭등하면서 인도와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폭력사태가 잇따르고 미국 월마트에서 1인당 쌀 구매량 제한조치가 내려졌던 2008년은 세계 농업이 기록적 풍작을 이룬 해였다. 만일 기후가 비정했다면 17세기 유럽 소빙기의 악몽보다 더 험악한 식량폭동이 일어났을지 모른다.
또 하나의 가정은 단일작물 대량생산의 경제성이다. 19세기 아일랜드 감자파동의 예처럼, 작목특화영농은 생태적으로는 참담한 농법이다. 특정 곤충이나 홀씨, 일기의 변덕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여기 덧붙여 저자들은 농업의 화석연료 의존 현실을 경고한다. 연료가 고갈되면 잉여농산물의 생산도, 수확도, 저장 유통도 불가능해진다. 식량이 없으면 인류가 멸망하는 것은 자명하다.
책의 저자들은 인류 문명사를 '음식 제국'의 역사로 기술하면서, 금세기의 풍요가 얼마나 위태로운 토대 위에 얹혀 있는지 밝힌다. 저 논거들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 잉여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숱한 전쟁, 자연 약탈, 농업의 변천과 식량 위기 등-이 책 내용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그래서, 저자들의 경고는 섬뜩하지만,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저자들의 결론은 이제 인류가 땅을 대하는 방식을 바꿔 지속가능한 음식 제국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웅장한 고찰에 비해 저자들이 제시한 해법은 소박하다. 작고 다양한 농업, 생물지역주의에 기초한 유통 등이다. 그래서 음식제국의 미래가 더 암울하게 느껴지는 걸지도.
최윤필 선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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