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정부와 미국 헤지펀드의 채무상환 소송에서 미국 법원이 헤지펀드의 손을 들어주면서 아르헨티나가 일시적 채무불이행(디폴트)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뉴욕연방법원은 22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가 엘리엇캐피털 등 헤지펀드에게 13억3,000만달러(1조4,400억원)를 상환하라고 판결했다. 이 소송은 아르헨티나가 2001년 12월 채무상환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한 후 채권자와 협의해 원래 빚을 일정 수준 탕감하는 채무구조조정을 실시했지만 헤지펀드 등 일부 채권자들이 전액을 상환하라며 제기한 것이다. 법원은 아르헨티나가 이들 헤지펀드에 빚을 다 갚지 않을 경우 이미 채무구조조정에 동의한 다른 채권단에도 원리금을 갚지 못하게 했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은 판결 직후 "단 한 푼도 줄 수 없다"며 강경 입장을 밝혔다. 투기자금이 자국의 경제위기를 틈 타 헐값에 국채를 매수한 만큼 정상적으로 상환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2001년 1,000억달러(109조원) 정도의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후 2005년과 2010년 채권자들과 합의한 구조조정에서 기존 전체 국채 규모의 93%를 원금의 3분의1 가격으로 할인해 250억달러 규모의 새 채권으로 교환했다.
그러나 소송을 낸 헤지펀드들은 아르헨티나가 모라토리엄 선언 직전 휴지조각이 된 국채를 대량 매입한 뒤 두 차례의 구조조정 참여는 거부한 채 채무 전액 지급을 요구해왔다. 아르헨티나는 부실채권을 사들여 높은 수익을 내는 투기자금인 이 헤지펀드들을 시체를 뜯어먹는 독수리에 비유해 '벌처펀드'라 부르며 상환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이번 판결로 다음달 15일 30억달러 규모의 만기 채권부터 곧바로 상환해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됐다.
아르헨티나가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벌처펀드 상환을 하지 않을 경우 11년 만에 다시 디폴트를 겪을 수 있다. 아르헨티나가 이번 판결에 불복, 법정 공방이 미국 대법원까지 가더라도 아르헨티나가 소송 동안 다른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어 디폴트 상황을 맞을 가능성도 있다.
FT는 이번 판결이 그리스 채무 구조조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채권단이 구조조정을 받아 들이지 않고서도 기존 권리만을 주장할 수 있게 돼 그리스 구제금융 프로그램 전체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은행(WB) 출신 변호사 위트니 드부보아는 "이번 판결이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이 위기국을 구제하는데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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