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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의 진면목 보여준 조선말 '황석영 아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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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꾼의 진면목 보여준 조선말 '황석영 아바타'

입력
2012.11.23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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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그려낸 자화상19세기 이야기꾼 이신통의 동학운동 등 파란만장한 인생 자전적 이야기·조선 사회상 엮어왜 이야기꾼인가소설가는 고독한 개인에 불과 이야기꾼은 사람을 변화시켜 지식인의 역할과 다르지 않아우리 서사의 울창한 숲으로한국 근현대 문학 원류 더듬어 '토방 이야기꾼' 한발짝 시도 늙은 작가의 '여향의 미학'

작가 황석영씨가 등단 50주년을 맞아 한국일보에 연재한 장편 '여울물소리'가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몇 해 전부터 '황석영 아바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겠노라, 밝혔던 작가는 이 소설에서 19세기 전기수(傳奇叟) 이신통을 빌려 황씨 자신의 생애와 근대 초 무렵 조선의 사회상을 드러내고 있다. 2000년 이후 근대 서구 소설과 한국적 이야기 전통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었던 작가는 신작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아예 근대 초 무렵 조선의 상황을 우리 전통 서사로 썼다.

라이벌 작가를 물어보는 해외 언론과 출판계에 황씨는 줄곧 "내 라이벌은 서구 일급 작가가 아니라 한국의 이문구"라 밝혀왔다. 무릇 작가는 변방의 이야기를 중앙에 전해주고, 중앙의 이야기를 변방에 퍼트리는 '외방 이야기꾼'과 자신이 몸담은 지역의 이야기를 재현하는 '토방 이야기꾼'으로 나뉘는데, 외방 이야기꾼인 황씨 자신은 토방 이야기꾼 이문구에게 경외와 질투를 느껴왔다 것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객지', '삼포 가는 길' 등 초기 작품으로 말미암아 평단이 자신을 리얼리스트라고 일컫지만, 작가 황석영은 기실 모더니스트라고.

황씨가 일컫는 모더니스트는 흔히 전위적 작품을 쓰는 초현실주의자를 뜻하는 평단의 통념과 동떨어져있는데, 아마 국민국가와 자본제 생산양식을 기반으로 한 모던(근대)의 억압과 모순을 드러낸 예술가란 의미인 듯하다. 젊은 시절 황석영은 이를 근대 서구 소설 양식으로 담았고, 2000년 이후 이를 한국의 전통 서사양식과 융합했다. 판소리 심청가를 20세기 현대로 재현한 장편 , 근대 한국의 개발독재 성장사를 몽자(夢字)류 소설로 담아낸 , 80년대 서울의 뒷모습을 현대적 민담으로 승화시킨 등이다. 해외에서 기회가 될 때마다 작가 황석영이 "이문구"를 외쳤던 속내는 이런 배경에서 읽어야 한다. 19세기 근대 조선을 전통적 이야기로 담아낸 이번 신작은 토방이야기꾼으로 한발 더 나아가려는 시도인 셈이다.

'천안 장터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울고 웃고 성나고 기쁘게 하기를 하늘이 여름날의 바람과 구름을 희롱하는 듯하였다.'(64쪽)

의 주인공 이신통은 19세기 말 조선 사회에서 서얼의 서자로 과거시험으로 대표되는 공식적인 출세 길이 막힌 것을 일찌감치 깨닫고 주변부 지식인으로서 살아가기로 한다. 어려서부터 사람들에게 책 읽어 주기를 즐겼던 그는 전기수에서부터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는 강담사와 재담꾼, 그리고 연희 대본의 필자로 활동하던 중 동학(소설에서는 '천지도'로 표현)에 입교하고 동학 창시자의 생애와 행적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하다가 관군의 공격으로 숨을 거둔다. 작품은 후반부로 가면서 동학(천지도)의 비중이 눈에 띄게 커지면서 동학농민전쟁을 중심으로 한 19세기 조선 사회의 격동을 그린다. 한데 왜 작가는 '황석영의 아바타'를 소설가가 아니라, 이야기꾼이라 강조하는 걸까.

'위대한 이야기꾼으로서의 모든 소설가는 마치 사닥다리를 위아래로 오르내리는 것처럼 그들의 경험을 자유자재로 이야기할 수 있다. 아래로는 지구의 내부에까지 이르고 위로는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하나의 사닥다리는 집단적 경험을 말해주는 이미지다. (…) 이야기꾼은 교사와 현자의 동렬에 끼어드는 셈이다. 그는 조언을 할 줄 아는데, 이때 그가 알고 있는 조언은 몇몇 상황에 도움을 주는 그런 속담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현자의 조언이다.' (발터 벤야민 부분)

근대의 시작 무렵, 독일 작가 벤야민은 소설가와 이야기꾼의 특징을 나누어 설명한다. 이야기꾼은 자신과 타인의 경험을 이야기로 승화해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반면, 소설은 고독한 개인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소설가는 다른 사람에게 조언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황씨가 줄곧 '이야기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생겨나나,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 어떤 것이 남고 어떤 것이 사라지나'(작가의 말)를 끊임없이 되물으며 '이야기꾼의 이야기'로 이 고민을 돌파하려는 것은 벤야민의 관점과 맞닿아있는 듯하다. 다시 말해 작가 황석영은 아직 근대 지식인의 가치와 역할이 유효하다고 믿고 있고, 이야기꾼으로서 지식인의 역할을 자신의 소명으로 알고 있으며, 이 소명 완성하기를 자신의 남은 임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가 수많은 인터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아직도 근대를 뛰어넘지 못했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이 소설을 쓰면서 "19세기 현실의 모순이 폭발한 것이 동학운동이었고, 그 문제의식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은 이런 관점을 다시 확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울물 소리는 속삭이고 이야기하며 울다 흐느끼다 또는 외치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다시 어디선가 나직하게 노래하면서 흐르고 또 흘러갔다'(488쪽) 연재 100회를 끝냈을 때, 작가는 "나는 이 소설을 통해서 '여향(餘響)의 미학'을 펼치고 싶다. 늙은 작가에게 남은 마지막 소리를 들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제목 '여울물 소리'의 숨은 뜻이다.

우리 이야기 전통을 소설에 접목한 는 프랑스와 중국에서 동시 출간됐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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