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콘서트·연극·공연 등 볼거리 모래판으로 끌어들여선수도 팬도 즐기는 무대 꾸며야
씨름판은 지금 30대 전성시대너무 오래 해먹는다는 비판 있지만후배들 기량 떨어져 아쉬움
스타 키우고 지역연고제 도입젊은 층에 다가가야 기회 있어샅바 잡은 뽀로로 뿡뿡이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나요
"구태를 답습한다고 씨름의 부흥기가 오는 게 아닙니다. 다른 모습으로 새로운 부흥기를 맞아야 합니다."(이태현 용인대 교수)
"바로 앞만 바라보는 게 아니라 100년을 내다보고 씨름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저변을 확대해야 합니다." (황규연 최고령 장사)
진지하고 깊이 있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1980~90년대 한국 최고의 스포츠로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민속씨름의 마지막 세대인 황규연(37ㆍ현대삼호중공업)과 이태현(36) 용인대 교수는 앞으로 씨름계를 이끌어가야 할 젊은 지도자이기에 고민이 많다. 씨름진흥법의 국회 통과 등으로 모래판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지만 현실은 척박 하기만 하다. 두 천하장사들과 함께 씨름계의 현안을 짚어보고, 씨름이 지속적인 사랑을 받기 위해서 나아가야 발전 방향을 제시해봤다.
민속씨름의 격동기를 함께 보낸 '20년 지기'
-벌써 20년이죠. 인연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황: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나서 3학년부터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동기다 보니 자주 연락하는 편입니다.
이:황규연 장사는 고3 때 저의 7연속 우승을 저지한 친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외도(종합격투기)를 한 뒤 돌아와서 공교롭게 2009년 추석과 천하장사 대회 결승에서 만났는데 2번 다 완패했죠. (황규연을 힐끔 쳐다보더니) 사실 당시에 어떻게든 장사가 되고 싶었는데. 황 장사가 워낙 막강했어요. 친구니까 한 번만 봐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니까요.(웃음)
황:('정말 그랬느냐' 이 교수에게 되묻더니) 사실 지금 이 교수의 아내와 처음 만났을 때도 둘이 같이 나갔어요. 함께 미팅 나가서 제가 이 교수를 팍팍 밀어줬습니다.(하하)
-민속씨름의 전성기를 누린 마지막 세대입니다. 침체된 씨름을 보면 느낌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
황:화려한 시대를 보냈지만 IMF를 거치는 등 격동기도 겪었습니다. 후배들이 예전의 영광을 다시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저희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이:저희보다 선배들이 씨름의 부활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데요. 저희는 '행동파'라고 할 수 있죠. 행동으로 선배들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씨름의 현주소 '30대 전성시대'
-모래판은 지금 30대 전성시대라 할 수 있는데요. 황규연 장사도 최고령 백두장사(2012년 추석장사)를 했고요. 베테랑들이 너무 많다. 너무 오래 해먹는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황:그런 얘기를 하면 저는 섭섭합니다. 젊은 선수들이 선배들을 이겨야지 비껴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대체적으로 이전보다 후배들의 기량이 떨어져 아쉽습니다.
이:선수들이 기술을 다양하게 익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보니 기량 발전에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동기부여도 이전보다 적어진 것 같고요.
황:저희는 민속씨름의 화려함을 보고 자란 세대입니다. 이만기 이준희 장사들을 동경하면서 정말 하고 싶어서 씨름을 했던 것이죠. 하지만 지금 선수들은 주위의 권유로 씨름을 접한 데다 '밥벌이'로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열정이 떨어지고 동기부여가 안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대학 선수가 한 200명 남짓 되는데 거기서 실업팀에 가는 선수가 10명에 불과합니다. 선배들을 이길 수 있는 기량을 가진 친구가 그 정도 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요즘 모래판에 스타가 없습니다. 인기가 없어서 스타도 없는 건지 아니면 기량이 출중한 선수가 없는 것입니까.
이:임태혁이나 이슬기 같은 기량이 빼어난 좋은 후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인기스타 발굴에 대한 노력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협회의 지원도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방송 출연도 많이 하고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는 등 '스타 만들기'는 연계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황:구단과 협회가 함께 스타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가 현역 시절 때에는 앙드레 패션쇼에서도 섭외가 들어왔습니다. 이처럼 큰 이벤트에 씨름 선수도 일원으로 참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씨름도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가미해야 합니다. 그래야 팬도 끌어 모으고 스타도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부흥 가능성 '초등학교'에서 확인
-재미 있는 씨름을 위해 규정을 많이 바꾸고 있습니다. '샅바싸움'도 없어졌는데 실제로 씨름이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하십니까.
황:팬들 입장에서 보기 편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샅바씨름을 하는 통에 팬들이 채널을 많이 돌렸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체중이 많이 나가는 선수들이 샅바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기술을 구사하는데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이:예전보다 활기찬 움직임은 분명 많아졌는데요. 힘의 씨름은 감소했다고 봅니다. 체계적으로 1개씩 맞춰가는 과정이고, 과도기라고 생각합니다.
황:씨름을 25,26년 해왔는데 2~3년 안에 룰이 모조리 바뀌었습니다. 솔직히 적응하는데 힘들었습니다. 이번 천하장사 대회(11월30~12월2일)에서도 규정(계체량 대신 연장전 도입)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공문을 보고서야 룰이 바뀐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 보니 지도자들조차도 헷갈려 합니다.
이:규정을 바꾸더라도 연구를 하고 실험을 한 뒤 장점을 받아 들여야 하는데 그런 게 부족했습니다.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변화를 주다 보니 우려가 되는 게 사실입니다.
-씨름진흥법이 통과되는 등 우호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데요. 씨름이 한 단계 더 발전하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이:제가 종합격투기를 했을 때 경기장 자체가 웅장하고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가득했습니다. 씨름도 팬들의 관심을 끌려면 콘텐츠를 생산해야 합니다. 물론 경기가 가장 중요하지만 이외 부수적으로 볼거리를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모래판 위에서 K-팝 콘서트와 연극, 공연 등을 할 수 있게끔 만들어야 가능성이 있습니다. 새로운 문화를 형성해야만 옛 부흥이 아닌 씨름의 새로운 부흥이 찾아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황:선수도 팬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무대가 있어야 합니다. 씨름을 알리는 게 최우선입니다. 국민한테 먼저 찾아가는 씨름 문화가 형성돼야 합니다.
이:학교에서 씨름의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동탄초등학교에서 씨름강습회를 한 적이 있는데요. 선생님이 학생들이 쓴 일기를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씨름이 재미 있는지 몰랐다'는 감동의 글귀들도 보였습니다. 학생들이 강습회 이후로 복도에서 씨름을 하는 통에 곤란해졌다는 선생님의 말에 눈물이 났습니다.
황:지역연고제를 하루빨리 도입해야 하는데요. 지난해 올스타전에서 해보니 팬들이 확실히 좋아했습니다.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이기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대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지금 씨름장 없는 학교가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어린이들이 씨름을 아예 접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저변확대가 우선입니다. 아이들이 자연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애니메이션 관계자를 만나서 뽀로로나 방귀대장 뿡뿡이 캐릭터가 샅바를 잡게 할 수 없는지 상의도 해봤습니다. 이 같은 새로운 시도로 우리세대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릴 때부터 씨름을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미래도 있습니다.
용인=김두용기자 enjoysp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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