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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상처는 진행형... 박제화·망각의 죗값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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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상처는 진행형... 박제화·망각의 죗값을 묻다

입력
2012.11.2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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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거렸고 따끔했다. 기억 저편으로 잊혀진 듯 했지만 막상 대하니 아물지 않았던 상처에 굵은 소금을 뿌려댄 것 같았다.

‘26년’은 강풀의 2006년작 동명 만화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5월 광주의 비극과 연관된 조직폭력배, 국가대표 사격선수, 현직 경찰, 대기업 총수, 사설 경호업체 실장이 26년 후 학살의 주범인 ‘그 사람’을 단죄하기 위해 작전을 펼치는 복수극이다. 철통 경호를 받고 있는 전직 대통령의 연희동 저택으로 침투하는 과정에선 액션 영화의 재미를 선사한다.

‘26년’은 여러 번 제작이 틀어졌던 영화다. 제작사 청어람은 올 3월 크라우드 펀딩을 시도했다. 일정 기간 익명의 대중으로부터 모금하는 방식으로 당시 3억8,417만원이 모였지만 목표액인 10억을 넘지 못해 무산됐다. 이후 제작진은 제작두레라는 새 형식을 도입, 회원에 가입한 이들이 돈을 약정하는 방식으로 1,500명으로부터 7억 원을 모았다. 이 돈은 영화 제작비에 큰 도움이 됐고, 국민적 관심을 불러 모았다.

영화 속 80년 당시의 광주 상황은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됐다. 갑자기 날아든 탄환에 무고한 시민들이 죽어나간다. 누나는 창자를 쏟아내며 죽어가고, 남편은 시체 더미에서 썩어간다. 다시 끄집어낸 아픈 기억들이다. 영화는 그 날의 비극이 결코 박제된 역사가 아닌, 살아남은 자들에게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아픔과 상처라고 이야기한다.

조근행 감독은 22일 시사회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대선을 앞두고 좋은 의미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잘못을 저지른 이들이 사과하지 않는다면 단죄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지 또 그러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 사람’ 역의 장광은 “강풀 작가가 지금 20, 30대들이 5ㆍ18과 8ㆍ15를 혼동해 이 만화를 만들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통해 확실한 역사관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영화 속 대사들은 망각의 죗값을 치러야 할 관객의 폐부를 향해 날카롭게 날아든다. 도청 앞에서 누나가 총에 맞아 죽는 모습을 목격했던 정혁(임슬옹 분)이 나중에 경찰이 되어 맡은 첫 임무가 ‘그 사람’의 차가 지나가도록 도로를 터주는 신호등 조작이다. 정혁은 누나를 떠올리며“어른이 경찰이 돼서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사는 것이 더럽고 치사하다”며 울분을 터뜨린다.

복수하기보단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김갑세(이경영)에게 미진은 “우린 그 사람한테 사과할 기회, 충분히 준 거 같은데”라며 처단을 요구한다. 복수에 나선 진배(진구) 때문에 구치소에 갇힌 보스는 면회 온 진배에게 말한다. “그걸 생각지도 못한 난 여기 들어와도 싸다. 아무렇지도 않게 금남로를 돌아다닌 것이 인생 쪽 팔리다”고.

연희동 자택에 쳐들어갔다 잡힌 주안(배수빈)에게 그 사람이 내뱉은 말은 그의 눈빛만큼이나 섬뜩하다. “요즘 친구들 나한테 감정이 안 좋아. 당해보지도 않고”

영화에서 가장 큰 울림을 주는 장면은 희생자들의 영정과 위패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광주 국립 5ㆍ18묘지 유영봉안소 장면이다. 진배와 미진을 내려다보고 있는 영정들의 시선이 공간 가득 먹먹함을 채워준다.

정치색을 띤 작품이란 부담에도 불구하고 배우들은 모두 호연을 펼쳤다. 특히 진구는 진배의 야성의 카리스마를 날 냄새 진동하게 잘 표현해냈다. 29일 개봉. 15세 이상.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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