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23일은 연평도 포격 2주년이다. 연평도 포격은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우리 영토을 직접 공격해 군인은 물론 민간인까지 희생시킨 반인륜적 군사공격이다. 갑자기 무차별적으로 쏟아진 170여발의 포격으로 연평도의 가옥 19채가 파손되고 불에 탔으며 산불이 발생하는 등 생지옥을 방불케 했다.
북한은 당시 오후 2시34분쯤부터 1시간10분 동안 76.2mm 평사포, 122mm 대구경 포, 130mm 대구경 포 등으로 황해도 무도와 개머리 해안포기지로부터 연평도 포격을 단행했다. 우리 해병대는 첫 타격 13분 후부터 K9 자주포를 무도 포진지에 50여발, 개머리 포진지에 30여발 총 80여발을 발사했다. 북한군은 해병대의 용감한 대응으로 10여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은 이날 인명살상용으로 사용되는 방사포, 열압력탄을 사용했다. 열압력탄은 공중에서 터지면서 작은 파편들로 퍼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인명을 살상하기 위한 것이다. 이로 인해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이 전사하고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서하사는 마지막 휴가를 받아 인천으로 나가려고 여객선에 탑승하던 중 포탄이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고 부대로 복귀하다 변을 당했으며 문일병은 대학 1학기를 마치고 해병대에 자원 입대한 지 3개월 만에 포병 진지 인근에서 파편을 맞아 안타깝게 전사했다.
우리 군은 연평도 포격 이후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창설해 병력 1,000여명을 보강하고 K9 자주포 추가 및 130mm 다연장로켓 배치 등 전력을 대폭 증강했다. 해병대는 2주년을 맞아 연평도 피폭 현장에 기념관을 건립한다. 또 전사한 고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군인 정신을 기리는 위령탑도 건립한다.
1,700여명의 연평도 주민들은 아직도 그 날의 공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각종 정신질환과 충격의 환상으로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수면장애로 고통속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삶의 터전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연평도 주민들은 1996년부터 매년 실시해온 한미 해상 호국훈련을 빌미로 무차별 살상 포격을 해온 북한을 원망하고 있다.
김정은은 연평도를 포격한 부대에 '영웅방어대' 칭호를 수여했다. 김정은은 지난 8월 서해 최전방부대인 연평도를 포격했던 해안부대들을 시찰하며 "우리 지역에 단 한 발의 포탄이 떨어져도 지체 없이 섬멸적인 반타격을 가하라"고 다시 주문했다. 김정은은 천안함폭침과 연평도포격을 자신의 영웅적인 군사업적으로 삼아 조선인민군을 통솔하고 있다.
서해 군사분계선인 NLL을 구실로 1,2차 연평해전과 대청해전을 일으킨 북한은 2010년에는 천안함폭침과 연평도포격을 감행하면서 자신들의 체제유지를 위한 무모한 도발을 계속 저질러 왔다. 김정은 3대 세습체제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 새로운 무리수를 둘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올해 4월에 장거리 미사일 실험발사를 하면서 주민들에게 체제의 우월성 홍보를 해왔으며 3차 핵실험의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이에 대응해 이명박 대통령도 10월18일 연평도 해병대를 방문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통일 될 때까지 목숨을 바쳐 NLL을 사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북에 대해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면서 "하나된 국민이 최강의 안보"라며 단호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북한은 남한과의 평화로운 관계가 1차적인 목적이 아니다. 연평도 포격으로 인한 남한 주민 몇명의 사망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자신들의 체제유지가 최대 관건이고 이를 위해서는 상상할 수 없는 도발과 테러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과거 경험으로 알고 있다.
북한의 내부 주민들의 동요가 커질수록 김정은은 새로운 남한 도발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 우리가 안이하게 북에 대한 경계를 늦춘다면 그 순간 제2, 제3의 연평도 포격은 재현될 수 있다. 북과의 평화체제 구축, 평화공동구역 설정 등도 좋지만 항시 그들의 노림수에 걸리지 않도록 철통같은 경계태세를 갖추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강승규 고려대 북한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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