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진면목을 21일 밤 11시 15분부터 KBS MBC SBS 방송 3사를 통해 처음으로 본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함께 3강을 형성하고 있지만 유독 지상파 방송에서 보기 힘들었다. 박 후보의 행적이 상세히 긍정적으로 소개되는 반면 이들은 부정적이거나 짧은 뉴스로만 나왔다. 박 후보가 3자 토론을 거부하면서 대선후보 토론이 한번도 이뤄지지 않았으니 트위터나 케이블과도 거리가 먼 중소도시와 농어촌 주민들에게 이들은 미지의 인물이었다. 이랬던 두 사람이 비록 늦은 시각이지만 텔레비전 방송을 탔고 토론 내용도 품위가 있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다양한 분야에서 핵심적인 의제들에 대해 해박하게 알고 있었고 상대방의 말이라도 수긍할 것은 수긍하는 자세가 이제 한국의 정치인들도 정말 남부끄럽지 않은 수준에 이르렀구나 자부할만했다. 그래, 2012년 아닌가, 감동하는 것은 하루도 가지 않았다.
22일 정오 서울의 세종문화회관 주변에는 똑같은 초록색 조끼를 입고 초록색 깃발을 든 수십 명의 어른들이 모여 내복을 입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익숙하다 싶어 돌이켜보니 딱 박정희 시절이었다. 새마을운동 대신 '뉴새마을운동'이라고 내세운 것만 달랐다. 대통령이 지나가면 온 국민이 나와서 태극기를 흔들어댄다, 거리에 똑같은 옷을 입은 이들이 늘어서서 '바른 생활'을 하라고 캠페인을 한다, 거리 곳곳에 '바른 생활'을 강조하는 현수막이 걸린다, 정부나 대통령을 비난하면 감옥에 간다, 방송은 모든 뉴스가 권력자에 대한 것으로 시작된다 등등.
이런 풍경은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은 물론이고 군출신 민간 대통령인 노태우 집권기(1988~1992)까지도 이어졌다. 공권력의 '지적질'에서 '절약하자' '혼식하자'같은 것은 일찍 사라졌지만 '외국인에게 웃자, 친절하자' 같은 어처구니 없는 내용은 지금도 여전하다. '바르게 살자'는 이명박 정부 들어 생겨나고 늘어났다.
노무현 대통령 때 잠깐 권력자 중심을 벗어났던 방송 뉴스가 다시 권력자 중심으로 돌아선 것도 이명박 정부 들어서이다. 요즘은 박근혜씨로 수렴되고 있다.
지방으로 내려가면 박정희 시대의 부활은 더 노골적이다. 특히 경상북도에서 일어나는 바람은 그토록 많은 피를 흘린 끝에 민주주의를 세운 나라가 맞냐 싶게 퇴행적이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이명박 정부 들어 전국에서 1,270억을 들여 박정희 추모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이달 초 폭로했다. 재정자립도가 50%도 안되는 구미시가 230억원을 들여 박정희 생가 주변에 새마을운동테마공원을 조성중이다. 여기에는 국비 396억원과 도비 119억원도 들어간다. 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박정희 동상을 제막했다. 구미시와 경쟁하는 청도군은 '새마을운동 발상지 성역화 사업'에 45억원을 쏟아부었다. 거리마다 새마을 기가 날리고 그냥 쉼터이던 곳이 모두 새마을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뒤 바위에는 박정희 사진까지 새겨넣었다고 어느 시민은 소개한다. 박정희가 누구인가. 쿠데타로 집권하고 10월 유신으로 민주주의 선거절차를 완전히 부정한 뒤 수업을 거부하는 것조차 사형사유가 된다는 긴급조치까지 발동시켜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처형한 독재자가 아닌가. 그런 그를 되살려 내는 이들은 무슨 망령에 씌인 것일까.
단일화 후보 토론회가 예정된 날(21일)도, 두 후보의 담판회동이 예고된 다음날(22일)도 두 후보의 이야기는 방송의 톱뉴스가 되지 않았다. 뿐인가. 방송보다는 권력에 덜 굴종적이었던 신문의 역사가 무색하게 조중동으로 불리는 보수 신문 3개는 아침 신문의 1면 톱을 단일화 아닌 걸로 찾았다. 밤 사이에 타결되곤 했기 때문에 절대로 신문이 호들갑스럽게 다루지 않는 버스파업과 일본의 극우화를 1면 톱에 세웠다. 설마 1985년 김대중씨가 미국 망명에서 돌아올 때 1단으로 보도해야 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좀비들이 지금 이 사회를 배회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어야 할 것이다.
서화숙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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