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가는 게 갈수록 힘들다고 말한다. 며칠 전에는 가계 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 비중을 나타내는 엥겔지수가 13.6%로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절대빈곤과 상대빈곤의 크기도 줄어들 기미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요구되는 수요에 비해 국가복지는 늘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서민들의 삶이 얼마나 곤궁하겠는가. 다들 아우성을 치고 있다. 이제 앞만 보고 달려왔던 과거의 관성대로 살아가기도 어렵다. 지친 몸과 다리가 더 이상 버텨주질 못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의 삶이 위기에 처한 것이다. 가장 많이 지치고 어려운 사람부터 하나둘 절망하고 포기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OECD 평균의 세 배나 되고, 범죄율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사회가 시장과 경쟁 만능의 신자유주의 경제사회체제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시장과 경쟁 만능의 경제체제와 선별적 복지체제의 조합을 교조적으로 떠받던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 노선이 우리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초래했고, 이것이 격차사회로 귀결된 것이다. 정부의 시장 개입은 최소화되고 보편적 복지가 가져다주는 삶의 안정감이 제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만 살자'식의 경쟁 시장에서 격차가 심화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결국 지금의 격차사회는 정부의 개입과 민주적 조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고삐 풀린 시장경제가 초래한 것이다. 보통사람들의 삶을 좌우하는 곳이 일자리인데, 바로 여기서 양극화와 격차 문제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10%의 좋은 일자리와 90%의 나쁜 일자리 간에는 넘나들기 어려운 장벽이 존재하고, 그래서 마치 한 나라에 두 세상이 있는 것 같다.
왜 일자리의 격차가 중요할까. 10%의 좋은 일자리는 모든 것을 보장한다. 높은 임금과 회사별 복지에 더해, 대부분이 정규직 일자리로 직업의 안정성도 높다. 반면, 90%의 나쁜 일자리는 저임금과 저열한 회사별 복지에 더해 대부분이 불안정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우리는 10%의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좋은 일자리는 언제나 10%밖에 없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확인할 뿐이다. 이것이 격차사회다. 지금 이 땅에서 10%의 좋은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은 복지국가 부럽지 않은 높은 소득과 완벽한 회사별 복지를 누린다. 하지만 나머지 90%는 사는 게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다 하나둘 절망하고 포기한다. 사람이 없는 삭막한 '시장'은 더 이상 역동성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창의적인 노동도 기업가적 도전정신도 발붙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할까. 격차사회를 넘어 복지국가로 가야한다. 무엇보다 일자리의 격차를 극복해야 한다. 1원 1표의 시장만능주의를 1인 1표의 민주주의로 조정하고 통제해야 한다. 이게 경제민주화다. 그래서 대기업과 함께 중소기업이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공정한 경제'를 확립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라는 규제정책을 넘어 중소기업과 사회적 경제를 능동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세재정정책을 펴는 복지국가 정부의 개입주의 전략이 요구된다. 최저임금을 급진적으로 인상하고, 실업자와 저숙련 노동자를 직업교육을 통해 더 나은 일자리로 옮겨가도록 지원하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일자리 간 시장임금의 격차를 줄여야 한다. 이에 더해 전부 아니면 전무인 기존의 회사별 복지를 국가의 보편적 복지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만들 사회는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나라, 소득과 사회서비스가 보편적으로 보장되는 나라, 패자부활이 가능한 나라, 누구에게나 인생 3모작의 기회가 주어지는 역동적 복지국가이다. 어제 대선후보 단일화 토론에서 문재인과 안철수 두 후보는 공히 격차사회를 넘어 복지국가로 가자고 약속했다. 다시 희망을 가져도 될까?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이상이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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