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ㆍ달러 환율은 전날 대비 1.7원 떨어진 1,081.5원으로 시작, 낙폭을 키워갔다. 그리고 오전 9시46분 2차 방어선으로 여겨지던 1,080원을 0.55원 남겨뒀다.
그 시각,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들의 휴대폰에 최종구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의 긴급 브리핑을 알리는 문자가 발송되면서 외환시장의 분위기가 반전됐다. 브리핑 내용이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관련이라는 예상이 전해지면서 6분 뒤 환율은 전날 대비 1원 올랐고, 브리핑이 시작되자 저점을 기록한 지 8분 만에 4.55원이나 치솟았다.
정부가 원화 가치 상승을 막기 위해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잇단 구두 경고에 이어 다음주에는 선물환포지션(은행의 자기자본 대비 선물환 보유액의 비율) 한도 조정 카드를 사용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정부의 강력한 시장 개입 의지표명에 원ㆍ달러 환율은 1,085.90원으로 상승 마감했다.
최 차관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최근 외환시장의 움직임이 과하다"며 "(원화강세로의) 일방적 쏠림 현상이 심해질 경우 정부는 주어진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엔화 대비 원화도 작년 대비 10%나 절상됐다"며 "지나치게 빠른 원화절상에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염두에 두고 있는 구체적 조치도 거론했다. 최 차관보는 "자본 유입의 속도를 늦추는 방안은 여러 개인데, 선물환포지션 한도 조정을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외국은행 국내지점 200%, 국내은행 40%'로 돼 있는 선물환포지션 한도를 낮추면 국내 시장에 달러 공급을 줄일 수 있다. 최 차관보는 "최근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이 은행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특별외환공동검사 결과를 분석한 뒤 내주 중에라도 신속한 결론을 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환율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그만큼 원화절상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최근 원ㆍ달러 환율은 고점(5월 25일 1,185.5원) 대비 10% 가까이 하락했고, 최근 3개월만 따져도 5% 떨어졌다. 급기야 정부가 티 나지 않게 지키려 했던 1,085원이 깨지고 1,080원선까지 위협받자 공개적으로 개입에 나선 것이다.
선진국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팽창한 유동성 때문에 우리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정부의 적극적 시장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김민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날 발표한 '글로벌 유동성 급증과 2013년 위험 요인'에서 "글로벌 유동성이 급증, 한국 경제를 교란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기업과 정부의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특히 김 연구위원은 외국인의 투자자금이 장기투자보다 단기적인 증권투자에 집중되는 점은 투자자금 유출 시 주가급락 등 금융시장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 이를 제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하락 추세를 막을 수는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이날 마지막 매도 물량이 만만치 않았던 걸 감안하면 당분간 소폭의 등락을 하면서 눈치보기를 할 것"이라며 "당국이 개입을 하더라도 강한 반등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도 "당국의 잇따른 강경 발언과 움직임이 환율의 방향성을 바꾸지는 못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야당 등 정치권에서는 외환시장의 불안정이 더 확대될 경우 선물환포지션 제도,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외환건전성 부담금 등 정부의 '거시건정성 3종 세트'로는 미흡하다며 토빈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단기 외화자금의 유ㆍ출입을 억제하기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자금에 세금을 매기자는 것.
이에 최 차관보는 "좋다, 안 좋다 말하기 어렵다"며 "정의 그대로의 토빈세를 도입하기는 어렵겠지만, 외환당국 입장에서는 자본 유ㆍ출입을 늦추고 통제할 수단을 갖게 된다면 환영할 만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3종 세트'가 제 역할을 못할 경우 더 강한 규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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