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을 막후에서 이끈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중동협상의 중재자로 떠올랐다. CNN방송 등 외신은 무르시 대통령이 14일 교전 발발 직후부터 가자사태에 적극 개입, 극적인 휴전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8일간의 교전의 무대는 이스라엘과 가자지구였지만 국제사회의 이목은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쏠렸다. 무르시 대통령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 귀도 베스터벨레 독일 외무장관 등을 만나 협조를 요청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도 수차례 전화통화를 하며 협상을 조율했다. 휴전이 공식 발표된 곳도 가자시티나 예루살렘이 아닌 카이로였다.
무르시 대통령이 휴전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것은 그가 소속된 무슬림형제단이 하마스의 사촌 격으로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1987년 출범한 무장조직 하마스는 원래 이집트 무슬림형제단의 한 분파였다. 파와즈 게르게스 런던정경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하마스는 무르시의 얘기를 듣는다"며 "그 때문에 이번 협상에서 이집트가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이는 무슬림형제단에 적대적이었던 호스니 무바라크(1981~2011년 집권) 전 대통령이 하마스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던 것과 대비된다.
신정주의 색채의 외교를 펼칠 것이라는 서방의 우려와 달리 무르시 대통령이 집권 후 미국 이스라엘 등과 우호관계를 유지해 온 점도 협상력을 높이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특히 하마스에 장기간 억류됐던 이스라엘 병사의 석방을 중재해 이스라엘 측 신뢰를 얻은 무함마드 셰하타 정보국장을 이번에 대 이스라엘 창구로 내세운 것이 주효했다.
국제사회는 일제히 무르시 대통령에게 찬사를 보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속가능한 휴전을 이끌어 내고 협상 과정에서 리더십을 보여줬다"며 감사를 전했다. 캐나다와 유럽연합(EU)도 찬사에 동참했다.
외교에서 취임 이후 최대의 성과를 올린 무르시 대통령이지만, 정작 국내에선 해묵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국민의 원성이 이어지고 있다. 21일 카이로에서는 무르시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나흘째 계속되면서 72명이 다쳤다. 시위대는 현 정부가 전 정권에서 발생한 유혈진압 책임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사를 비난하고 있다.
이번 휴전과 관련, 무르시 대통령은 자국 내 엄존하는 반 이스라엘 여론을 잠재워야 할 과제도 안고 있다. 이스라엘이 휴전을 깨거나 팔레스타인 탄압을 계속할 경우 무르시 대통령이 외교에서도 궁지에 몰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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