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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술혁명 프런티어] 약 안듣는 난치성 고혈압, 콩팥 신경 차단술로 혈압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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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술혁명 프런티어] 약 안듣는 난치성 고혈압, 콩팥 신경 차단술로 혈압 '뚝'

입력
2012.11.22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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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고혈압 때문에 약 달고 사는 사람 종종 본다. 고혈압은 만성 질환 가운데 유병률이 가장 높다. 오래 되면 뇌나 심장, 혈관에까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꼭 치료해야 한다. 그런데 간혹 약을 서너 가지씩 먹어도 혈압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난치성 고혈압 환자들은 달리 손써볼 방법이 없었다.

최근 삼성서울병원이 난치성 고혈압 환자를 위한 새로운 시술을 시작했다. 혈압을 올리는 신경을 아예 차단하는 방식이다. 지난 3월 국내에서 처음 이 시술을 선보인 의사가 권현철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다.

4가지 약으로도 160, 100이면 대상

혈압이 올라가는 메커니즘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콩팥의 조절 기능이다. 혈압이 떨어지면 콩팥은 호르몬을 분비해 뇌와 연결돼 있는 신경으로 혈압을 올리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 신호가 너무 과하거나 비정상적일 때 고혈압이 생긴다. 권 교수가 처음 시도한 시술은 콩팥 신경이 신호를 보내지 못하게 고주파 열로 지지는 신장 신경 차단술이다.

콩팥 신경으로 접근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구는 가늘고 긴 관처럼 생긴 카테터다. 끝에 고주파를 내는 전극이 달린 카테터를 환자의 다리 동맥을 통해 콩팥의 혈관으로 넣는 것이다. X선 사진으로 혈관의 위치를 확인한 다음 혈관 안에서 밖을 향해 고주파를 쏘아 신경을 손상시키면 된다. 권 교수는 "콩팥 신경 4~6곳 정도가 손상을 입으면 시술 후 1년에 걸쳐 계속 혈압이 내려간다"며 "지금까지 총 26명이 시술을 받았고, 평균 25mmHg 정도 혈압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한 가지 약으로 보통 10~20mmHg 정도 혈압이 떨어지니 평생 쓰는 약재보다 한번 시술의 효과가 높은 셈이다. 시술은 부분마취로 40분~1시간 걸리며, 환자 상태에 따라 시술 당일 바로 퇴원하기도 한다.

현재 권 교수팀은 약을 4가지 이상 쓰는데도 혈압이 160(심장이 수축할 때 혈관이 받는 압력), 100(이완할 때 압력)mmHg로 높은 상태가 계속되는 환자 중 콩팥이 건강한 사람에게만 이 시술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약을 3가지 넘게 쓰는데 혈압이 140, 90mmHg이면 난치성(치료저항성) 고혈압으로 보지만, 국내에서 처음 시도하기 때문에 시술 대상에 좀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는 게 권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콩팥 신경이 차단돼도 혈압을 조절하는 다른 메커니즘들이 작용하기 때문에 저혈압이 생기진 않고, 카테터가 들어갔던 혈관이나 콩팥에도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교감신경 건드리는 첫 치료법

신장 신경 차단술은 의학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고혈압 신호를 보내는 콩팥 신경은 교감 신경이다. 주로 척추와 내장 주변에 분포하면서 생명과 직결되는 신호를 전달하는 교감 신경을 직접 건드리는 치료법은 신장 신경 차단술이 처음이다. 권 교수는 "심부전과 부정맥, 당뇨병, 수면무호흡증 등 교감신경 문제로 생기는 병은 많다"며 "외국에선 교감신경을 자극하거나 차단하는 방식으로 이런 병을 치료하는 시술법도 연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신장 신경 차단술이 가능해진 건 카테터의 변화 덕분이다. 권 교수팀이 쓰는 카테터는 암을 잘라내거나 부정맥(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는 병) 등을 치료할 때 쓰는 일반적인 카테터와 다르다. 권 교수는 "부정맥 치료에 쓰는 일반 카테터에서 나오는 높은 에너지의 고주파를 혈관에 쏘면 주변 조직까지 손상이 크다. 때문에 신장 신경 차단술에는 온도를 50~60도 정도만 올려 정확히 신경만 손상시킬 수 있도록 개량된 카테터를 쓴다"고 설명했다.

한 의료 기기 회사의 국제 자문 위원으로 활동하다 이 카테터를 개발 단계부터 접한 덕에 권 교수는 다른 의사보다 한발 앞서 신장 신경 차단술을 시도할 수 있었다. 그는 "고혈압 약은 최대 용량을 넘기면 효과는 줄고 부작용은 커진다. 이 시술이 좀더 확산되면 고혈압 치료 비용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전체 고혈압 환자의 약 1%가 이 시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걸로 권 교수는 예상한다.

"새로운 시도는 의사로서의 생명"

대학 병원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게 권 교수의 신념이다. "단 윤리위원회의 허가를 얻은 임상시험 같은 학계의 정해진 절차에 따라 과학적이고 윤리적으로" 한다는 전제 하에서다. "아무리 뛰어난 의술이라도 환자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학계에선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시도한 신기술이 학계의 인정을 받아 널리 확산되는 건 의사이자 연구자로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다.

권 교수팀은 최근 심장학계의 핫이슈인 경피적 대동맥판막치환술(TAVI)의 선두주자로도 꼽힌다. TAVT는 심장의 출구인 대동맥 판막이 너무 두껍고 좁아져 숨이 차거나 가슴 통증이 있는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에게 새 판막을 넣어주는 시술이다. 새 판막을 작게 접어 그물망(스텐트)과 途?다리 동맥을 통해 대동맥에 삽입해 판막을 교체하고 넓히는 것이다. TAVI를 할 수 있는 병원은 국내에 몇 안 된다. 권 교수는 "심장을 멈추고 인공 판막을 넣는 기존 수술이 불가능한 고령 환자를 위한 최신 치료법"이라고 소개했다.

좁아진 혈관 때문에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는 협심증이나 심근경색 치료법으로 자리 잡은 관상 동맥 중재술(작은 풍선이나 스텐트를 넣어 혈관을 넓혀주는 시술)을 할 때 스텐트를 다리가 아니라 팔(요골 동맥)을 통해 삽입해 하루 만에 퇴원하는 방식도 2001년 권 교수가 처음 도입했다. "최근 5~10년 사이 우리나라 심장 분야 임상 연구는 미국 못지 않은 수준으로 발전했다. 앞으로의 성장은 국내 의료 기기 산업이 얼마나 뒷받침 돼 주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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