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에게 의사나 한의사는 특별한 존재다. 그 어렵다는 공부를 마친 지식인이니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여기며 사람들은 그들의 언행을 주목하곤 한다. 그런데 최근 의료계를 들여다보면 이 같은 기대가 무너진다.
지난 10월 말 고성을 지르고 오물을 뿌리며 서울 시내 한 사무실을 기습 점거한 사람들, 바로 한의사들이다. 몇몇 언론을 통해 보도된 점거 현장 사진에는 아수라장이 된 실내 벽에 '식약청의 X'라는 욕설까지 버젓이 쓰여 있었다. 치료용 한방 첩약에 건강 보험을 적용하는 시범 사업을 벌이면서 한약 조제 자격이 있는 약사도 참여하는 방안을 대한한의사협회 집행부와 함께 검토하려는 보건복지부에 불만을 품은 일부 한의사들이 집행부의 책임을 묻겠다며 협회 사무실에서 집단 행동을 벌인 것이다.
환자들 눈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한의계 내부에서조차 "주장을 펴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벗어났다"며 "한의계에 대한 이미지가 크게 손상됐을 것"이라며 한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12일부터 5일간 노환규 대한의사협회장은 단식을 했다. 정부가 사사건건 의사들에게 불리한 제도를 고집한다며 회원(의사)들의 대정부 투쟁 동참을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이어 의협은 19일 "주 5일 40시간 근무를 보장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고 야간 진료나 토요일 진료 등을 거부하자며 회원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의협의 강경 노선에 대해 의료계 내부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부 개원의들의 생각이 마치 전체 의사의 입장인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포괄수가제 정책에 반발해 일부 안과의사들이 백내장 수술을 거부하겠다고 한 게 불과 몇 달 전인데 이번엔 토요일 진료 안 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니 환자들도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의사와 한의사들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는 된다.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수가(의사가 받는 진료비) 때문에 경영이 어려운 병ㆍ의원은 야간, 토요일 진료까지 하며 업무량을 늘려야 하니 그들 삶의 질은 점점 떨어진다. 한방 진단권이 없는 약사의 첩약에까지 건강 보험을 적용해야 하느냐의 문제는 한의사와 약사뿐 아니라 환자들과도 치열한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이들 모두 집단 행동이나 투쟁 같은 방식을 동원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로 상대방을 조목조목 설득해야 할 일이다.
의대를 졸업할 때 의사들은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다'는 제네바선언을 한다. 의사윤리지침 제 6조에는 '의사는 진료의 요구를 받은 때에는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돼 있다. 한의사들 역시 윤리 강령을 통해 '우리는 의료인의 품위를 훼손시키는 자기선전 및 광고를 하지 아니한다'고 선언해 왔다.
누워 침 뱉기란 지청구를 듣기 전에, 스스로 내세워온 지침과 강령이 더 이상 무색해지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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