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합니다! 첫 번째 당첨 번호는 98*번 입니다."
70㎝ 높이의 투명 원통에서 번호가 적힌 공이 나오는 순간, 1학년 교실에서 TV를 통해 지켜보던 50여명의 입에서 "와"하는 탄성과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부러움과 아쉬움이 담긴 눈길이 당첨된 번호표를 가진 이에게 일제히 쏠렸다. 번호표를 가진 30대 남성은 자랑스럽다는 듯 '씨익' 웃어 보였다. 이런 광경이 35곳의 교실에서 연출됐다.
복권 추첨을 떠올리겠지만 21일 국립 서울교대부속초등학교의 2013학년도 입학생을 뽑는 자리에서 벌어진 진풍경이다. 번호가 적힌 공 하나가 뽑힐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지고, 하얀 칠판 앞에 선 교사는 호명되는 번호를 또박또박 적어 내려갔다. 현장에서 만난 학부모 이모(37)씨는 "시어머니께서 어제 돼지꿈을 꾸셨대서 그 꿈까지 샀다"며 "로또 당첨을 기다리는 심정"이라며 초조해했다.
남ㆍ녀 신입생 96명을 뽑는 추첨에 응모한 사람은 개교이래 가장 많은 3,422명. 경쟁률이 무려 35.6 대 1이다. 역시 역대 최대치다. 서울 시내 사립초등학교 39곳의 2013학년도 신입생 입학생 추첨 평균 경쟁률은 2.07대 1. 서울교대부속초교는 이보다 17배나 높은 수준이다. 이 학교는 2008~2010년까지 평균 2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서울시내 또 다른 국립 초교인 서울사대부속초교의 올해 경쟁률도 25.9대 1로 이와 비슷하다.
수 십 대 1의 높은 경쟁률에 학부모들의 초조감이 짙게 묻어난 이 학교의 입학생 추첨현장은 과열경쟁과 빗나간 교육열의 한 단면도 드러내 씁쓸함을 자아냈다.
일단 내고 보자는 심리에 응모해 당첨이 됐지만 정작 먼 통학 거리를 걱정하는 학부모들이 상당수였다. 주부 강모(40)씨는 "번호가 불리는 순간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뻤지만 아이가 집에서 학교까지 통학하려면 1시간이 넘어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첨 확인증을 손에 쥐고 이사를 하느냐 마느냐로 남편과 현장에서 말다툼을 하는 부부도 있었다.
심지어 위장 전입까지 감수하고 지원하는 학부모들도 있었다. 한 학부모는 "현재 사는 곳은 경기도지만 아이의 주민등록상 거주지만 서울에 사는 지인의 집으로 올려놨다"며 "당첨이 되면 서울로 이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과열경쟁이 빚어지게 된 데는 교육비는 무료나 다름없는 반면 사립학교를 뛰어넘는 교육의 질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학부모 김모(42)씨는 "다른 공립초등학교는 선생님들이 순환식으로 바뀌는 반면 이곳은 서울교대를 졸업한 실력 있는 교사들이 시험까지 보고 들어온다"며 "교사들 질이 높고 안정적으로 근무를 하니 교육 수준이 자연스레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 이모(38)씨는 "남들처럼 분기 별로 100만원 이상의 수업료를 내야 하는 사립초교를 보내지 못해 아이한테 미안하고 속상한 상황에서 교대초교는 마지막 희망"이라며 "국립이라 무료이지만 사립초교만큼의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다 '강남'이라는 지리적 이점도 한 요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봉환 숙명여대 교수(교육학)는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려는 부모들 욕심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 경쟁의 전초전을 치르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장은숙 참교육학부모회 회장도 "국립 초교를 만든 이유는 수업료 부담이 어려운 서민층을 위하자는 취지"라며 "본연의 역할을 되찾을 수 있도록 국립학교를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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