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낸 피의자가 의식을 잃어 강제 채혈을 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사후 압수영장을 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채혈 결과를 음주운전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음주 상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낸 혐의(도로교통법 위반)로 기소된 김모(59)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의자가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응급실 등의 장소에서 의료인이 채혈하는 경우에는 영장 없이 혈액을 압수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수사기관은 지체없이 법원으로부터 사후에 압수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며 "사후 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채 채취한 혈액의 분석 결과는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본인 동의가 없거나 사전 영장이 없으면 강제 채혈을 할 수 없다는 종전 입장에서 나아가 긴급한 사항과 엄격한 요건이 인정되면 강제 채혈을 할 수는 있지만 이 경우에도 사후 영장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처음 명확히 한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지난해 3월 서울 구로동에서 만취 상태로 오토바이를 운전하다 사고를 낸 후 의식을 잃었다. 출동한 경찰관은 응급실로 이송된 김씨의 음주운전 여부를 수사하기 위해 아들의 동의를 얻어 혈액을 채취했다. 경찰은 혈액 체취 결과 김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0.211%로 측정되자 김씨를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했으나 1ㆍ2심은 "경찰이 얻은 혈액 감정 결과는 적법한 증거수집 절차를 거치지 않아 효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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