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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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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입력
2012.11.2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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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발표된 박민규의 는 '자리'라는 말이 몇 번 나온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상고를 다니며 오만가지 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하다 지하철 푸시맨을 하게 된다. 아침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사람들은 전철을 타야했고 전철엔 '탈 자리'가 없었다. 푸시맨이란, 자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만들어주는 직업이었다. '신체의 안전선'에서 '삶의 안전선'으로 밀어 넣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자리를 만들어주던 주인공은 그러나 학교로 돌아와서 들은 말은 '자리가 없어'라는 말이었다. 세상은 불황이었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아들은 기린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리가, 자리가 있다고 한다.'

이로부터 8년의 세월이 흘러 발표된 김애란의 소설 의 시작과 끝에도 '자리'가 나온다. 어릴 적부터 가족으로부터도 홀대 받던 주인공은 서울로 올라와 택시기사를 하던 어느 날 중국동포 출신의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살림을 차린 후' 의지할 데가 없었던 이 두 명은 '수중의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열에 들뜬 청춘처럼', '늙은 추방자들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서로 살만 섞는다. 이때가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고 '처음으로 쉬는 느낌'을 가졌던 때였다. 그러나 그녀는 병이 깊은 몸이었다. 결국 그녀는 죽게 되고 그녀가 녹음한 중국어 테이프에서 흘러나는 말이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여기서 멉니까"이다.

자리, 8년의 세월을 지나 두 명의 소설가가 '자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만큼 지난 10년간 자리야말로 우리 삶에 절실한 것이 되었다는 말이다. 용산이 불타고, 쌍용차에서 사람들이 쫓겨나고, 밀양 송전탑에서 할머니들이 농성을 하고 있는 것이 다 파괴되고 있는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지 않는가. 자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생존의 수단이며, 존재의 근거이며, 또한 살아갈 자격이다. 일'자리'가 없다면 생존할 수가 없으며, 살'자리'가 파괴되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다. 또한 어떤 곳에 내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는 것은 그 장소에 내가 있을 자격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지난 10여년이 넘게 우리가 경험한 것은 자리가 마련되고 그 자리에 더 많은 사람들이 초대되는 것이 아니라 '의자놀이' 게임처럼 게임이 진행되면 될수록 자리는 사라지고 사람들은 추방된다는 것이었다. 자고 나면 자리가 사라졌고, 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생존수단을 잃고, 살아갈 자격을 박탈당하고 사라졌다. 그래서 우리는 입술을 바짝 태우면서 물을 수밖에 없다. "제 자리가 어디입니까?"

대통령 후보 모두가 다 일'자리'를 이야기한다. 재개발에서부터 프랜차이즈 가맹점 인테리어까지 '자리'를 보호하고 지키겠다고 말하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다. 나라가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자리'를 만들고 그걸 지켜주는 것인데도 그 동안 정치가 한 일이라고는 자리가 아니라 되려 자리를 빼앗는 '의자놀이' 게임을 보호하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경제적 자리를 만들고 지키는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시민들 자신들이어야 한다. 그 때문에 시민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경제적 자리를 요구할 수 있는 정치적 자리이다. 정치적으로 '자리'가 있는 사람만이 자신의 경제적 자리를 남이 아니라 자신의 힘으로 지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나라가, 정치가 할 일은 구조적으로 정치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에게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투표시간 연장은 이런 점에서 경제적 이유로 정치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에게 자리를 마련하는 가장 초보적인 조치에 불과하다. 투표시간이 연장된다고 하더라도 이번 대선에서 자신의 자리를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당장 글을 쓰고 있는 나만 하더라도 투표라는 걸 한 이후로 이렇게 나의 '욕망'과 '관심'이 반영되지 않는 선거는 처음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이 게임에서 내 자리는 어디인지 도통 모르겠다.

나는 지금 당장이라도 정치 스스로가 마련할 수 있는 '자리'는 외면하면서, 일'자리'를 약속하는 후보는 믿지 못하겠다. 자기 손에 쥔 것도 못 주는 사람이 어떻게 남의 손에 쥔 것을 준단 말인가? 당신들의 게임에서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엄기호 교육공동체 벗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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