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PC업체인 휴렛팩커드(HP)가 초유의 M&A사기를 당했다. 이로 인한 피해금액만 우리 돈 10조원에 달한다.
HP는 20일(현지시각) 실적보고서를 통해 4분기(8월~10월)에 총 68억5,000만달러(주당 3.49달러)의 순손실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대규모 적자가 발생한 것은 작년 8월 인수한 영국의 검색 엔진 전문회사인 오토노미가 실적을 부풀린 사실을 뒤늦게 파악했기 때문. 이로 인해 HP는 4분기에 총 88억 달러(9조530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손실 비용으로 처리했다. HP가 오토노미를 111억 달러에 인수했음을 감안하면 사실상 M&A 사기를 당했음을 인정한 꼴이다.
HP는 "오토노미의 경영진이 악의적으로 실적을 부풀려 주주를 오도한 것"이라며 "미국과 영국 당국에 조사와 수사를 의뢰했으며 민ㆍ형사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HP의 이번 발표에 대한 의혹의 시선도 적지 않다. 오토노미가 상장회사였던 만큼 분기마다 감사를 받아왔으며 인수 과정에서도 기업 실사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마이크 린치 전 오토노미 최고경영자(CEO)는 즉각 "문제가 있었다면 이를 공개하기 앞서 먼저 나와 접촉했을 것"이라며 "88억달러란 상각비용은 이해할 수 없으며 날조된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일각에서는 취임 1년을 갓 넘긴 맥 위트먼 HP CEO가 과거와 선을 긋고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려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오토노미 인수 당시 이를 주도한 인물은 모두 회사를 떠난 상황. 레오 아포테커 전임 CEO는 작년 9월 물러났고, 마이크 린치 오토노미 CEO도 지난 5월 퇴임했다. 맥 위트먼 CEO는 "이 같은 부정은 마이크 린치의 퇴사 후 내부조사 과정에서 밝혀졌으며 레오 아포테커 전 CEO 등이 이러한 부적절한 회계 오류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전임 경영진에 책임이 있음을 시사했다.
문제는 HP의 M&A 실패가 처음이 아니라는 점. 지난 분기 실적발표 시에도 2008년 140억 달러를 들여 인수한 일렉트로닉데이터시스템(EDS)의 서비스 부문 부진으로 110억 달러를 손실 처리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HP가 2001년부터 인수합병에 들인 비용만 670억 달러에 달하는데 현재 HP의 자본규모는 234억 달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HP는 현재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빠진 형국. HP의 주가는 올 들어서만 50% 가량 주저앉으며 10년 사이 최저치까지 추락했다. PC 부문에서는 중국의 레노버에 1위를 내주고 3위로 밀렸다. 최근 10년 사이 4번째 CEO로 취임한 맥 휘트먼은 올해 초 인력 감축과 마케팅비용 절감 등을 위해 PC사업부와 프린터사업부를 통합하는 기업 회생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씨넷은 "HP는 미국 산업에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후폭풍이 크다"며 "아무도 맥 휘트먼의 실패를 바라진 않는다"라고 보도했다.
유환구기자 redsu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