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면에서 세 번 연속 각기 다른 방식으로 대선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다. 지난 두 번은 세 후보에 대해 분석적으로, 그리고 비유적으로 접근해 보았으니 이번에는 한참 단일화 논의를 하는 두 후보에 대해 남들과 다른 식으로 접근해 볼까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문후보 측으로선 안후보와 비교대상이 되는 것만으로 억울할 것이다. 준비된 정책과 동원할 수 있는 인력풀의 경험에서 볼 때 '안철수 대통령'의 정치적 가능성은 '문재인 대통령'에 비해 참담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에게 안철수가 강적으로 남아 있느냐다.
이런 경우 민주당 지지자들은 흔히 '현혹된 국민'을 비판한다. 가령 2007년 대선의 기록적인 패배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여전히 '사기꾼 이명박에게 휘둘린 국민들'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의 선거에서 '국민의 자질이 모자라서 패배했다'고 말하는 것은 '정신승리' 이상의 변명이 되지 못한다. 또한 그들이 야권단일화 상황에서 선거에 나오려는 소수정파들을 흔히 '국민의 뜻'을 논거로 비판한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진단은 일종의 자기모순이다.
그렇다고 '몇 번을 해봐도 몇 번을 해봐도 안철수가 쓰러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안 후보 개인의 카리스마와 역량을 내세우는 것도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그는 출마선언 후에도 여전히 준비가 안 된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는 '국민의 뜻'을 거듭 말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박근혜 후보에 대한 가장 강력한 대항마인 이유는 지난 5년간 민주당이 구축해 왔던 전략이 우연히 자당 후보가 아닌 안후보에 의해 '발동'된 탓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기실 안 후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이명박 정부 시대에 민주당과 진보언론들이 자신의 기득권과 생존을 위해 지나치게 강조하고 부풀렸던 정치적 전략들이다. 그들은 차기주자인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이란 것이 아킬레스건이라 보았다. 그들이 박근혜에 비해 어떻게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인지를 말하기보다, 독재자의 딸을 민주공화국의 수반으로 용인하는 것이 상징적으로 얼마나 끔찍한지를 강조했다. 또한 그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각종 의혹들에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부패한 정치인'의 상을 만들어냈고 이에 대한 대척점을 세우기 위해 '이가 아니라 의를 추구하는' 정치인의 '진심'을 강조해왔다. 이것들을 위해 소수정파들의 출마는 억압되었고, 정당정치 역시 억압되었다.
그러나 이 두 관점은 '안철수 대통령'의 정치적 가능성만큼이나 허망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사회를 유신체제로 되돌리지 못한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재벌들부터가 그녀를 지지하지 못할 것이다. 부르주아들이 그녀를 지지하는 이유는 그녀가 박정희를 재연하리라 기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러지 못하리란 걸 알기 때문이다. 또 정치인의 부패는 심각한 문제지만, 정책문제를 덮는 근본적인 대립지점은 되지 못한다. 가령 한미FTA가 문제라면 그 효과는 국가발전을 위한 선한 마음에서 추진하든 사리사욕을 위해 추진하든 동일한 것이다.
결국 '독재자의 딸'에 대한 집착과 제도 및 정책을 고민하지 않는 '진심'에의 강조가 안철수로 하여금 정당을 위협하게 만든 것이다. 정권교체를 말한다면, '진심'을 말한다면, 안철수가 더 우위에 있는 기묘한 상황이다. 지금 민주당 측이 안후보를 비판하기 위해 꺼내드는 말들은 안쓰럽게도 그들이 지난 5년 동안 별로 내세우지 않던 것들이다. 15년 전 대선에서 유시민이 당선가능성을 위한 '제3후보론'을 내세울 때 강준만은 "제3후보를 내세우는 것보단 김대중으로 지는 편이 낫다"고 말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야권은 그러한 '포지티브'한 논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못했다. 그 결과 그들은 "박근혜를 막고 싶거든 안철수를 찍어라"는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자기보존 본능으로 '안철수 뒤에 이명박이 있다'는 뜬소문이나 유포하게 되었다. 민주당이 안철수를 욕하기 이전에 스스로를 먼저 돌이켜야 하는 이유다.
한윤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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