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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또 한 명의 조종사를 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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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또 한 명의 조종사를 보내면서

입력
2012.11.2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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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조종사 김완희 소령이 하늘에서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그가 탑승했던 T-50항공기는 우리 손으로 설계되고 우리가 제작한 최초의 초음속 훈련기로 2002년 8월 초도비행 이후 5만시간 이상을 비행하는 동안 한건의 사고도 없이 우리공군의 조종사 양성을 위한 고등비행훈련을 담당해 왔다. 이러한 안전성을 인정받아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여러나라에 수출도 기대되고 있는 우수하고 자랑스러운 항공기이다.

브랙이글스 특수비행팀은 6월 영국에서 개최된 세계 최고 수준의 에어쇼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했고 그 공로로 에어쇼 참가자들이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최고의 항공기로 구성된 최고의 특수비행팀에서 최고의 조종사로서의 꿈을 이루어 가던 한 청년이 젊은 아내와 8개월 된 딸을 남기고 떠나간 것이다.

공군 조종사들은 어렵고 위험한 훈련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 조종사들은 최선봉에서 극단의 치열한 전투를 직접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평시에도 전시상황과 다를 바 없는 고강도 훈련에 밤낮없이 매달려야한다. 공중전에서 적기를 격추시키고 적지에서 적의 지대공 유도탄과 대공포화를 회피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감내하기 힘든 신체적 한계에 까지 이르는 고난도의 기동을 체질화해야 한다. 악기상,

비행착각, 공중충돌,기체결함 등 사고위험에 항시 노출되어 있다.

2010년 3월 강릉기지에서 이륙 중 아기와 함께 순직한 고 오충헌 대령은 그의 일기장에 "군인은 오직 충성만을 생각해야 한다. 비록 세상이 변하고 타락한다 해도 군인은 변치 말아야 한다. 영원한 연인 조국을 위해 오로지 희생만을 보여야한다" 라는 말을 남겼다.

오 대령의 말과 같이 조종사들이 충성심 하나로 오직 조국을 위해 희생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임무에만 전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군에는 계급정년 제도가 있어 상위계급으로 진급하지 못하면 소령 45세, 중령 53세, 대령 56세에 전역해야 한다. 그런데 공군조종사들의 대령 진급률은 30% 수준에 지나지 않아 나머지는 53세 이전에 전역하게 되는데, 그 연령이 되면 민항공사 취업도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유능한 젊은 조종사들은 불확실한 미래와 불안정한 생활을 감내하며 오직 국가를 위해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높은 보수와 안정된 생활, 그리고 60세 이상의 정년이 보장되는 민간항공사로 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금년에도 150명 이상의 조종사들이 전역을 하게 된다고 한다. 조종사 유출 문제는 해마다 거론되어 왔지만 그간 시행된 대책이라고는 얼마간의 수당을 인상하고 군인사법을 개정해 10년이었던 조종사들의 의무복무기간을 15년으로 늘린 것뿐이다. 다시 말해 강제로 붙잡아 두는 일 외에는 별다른 대책을 세워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F-15 전투기는 한 대에 1,000억 원이 넘는 고가의 장비이다. 그리고 교관급 숙련 조종사 한 명을 양성하는데는 100억 원이 넘게 소요된다.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고 어려운 과정을 통해 양성된 조종사들이 민간항공사로 조기에 유출되는 것은 엄청난 국가적인 손실이다. 그 손실을 금액으로 환산해 본다면 다양한 대책들이 강구 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대책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직업 안정성을 높여 주는 것이다. 56세까지 복무할 수 있는 대령 계급으로의 진급기회를 60% 수준으로 높혀 주는 것만으로도 조종사들의 이직률 감소에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들이 있다.

막대한 국가 재산을 책임지고 생사를 넘나드는 고난도의 훈련을 계속하며 전시에는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될 조종사들이 오충헌 대령이 일기에 남긴 말처럼 오직 국가에 대한 충성과 희생만을 생각하며 임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공중에서 산화한 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그들이 남기고간 유가족들에게도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이한호 전 공군참모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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