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이 철탑에 오르고 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20일 송전탑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현대차 하청 노동자와 대양운수 버스기사들도 각각 34일, 7일째 고공농성 중이다. 노사 교섭이나 사회적 갈등조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극단적 투쟁이 반복되면서 노사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20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에 따르면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인 한상균(51) 전 지부장, 문기주(52) 정비지회장, 복기성(36) 비정규직 수석부지회장은 이날 오전 4시 쌍용차 평택공장 정문에서 300여m 떨어진 송전탑에 올라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송전탑 30m 높이에서 몸에 줄을 묶고 가로ㆍ세로 2m, 1m 크기의 합판 2개에 의지해 앉아 있는 상태다.
이번 고공농성은 2009년 정규직 2,646명, 비정규직 450명 정리해고 후 교섭과 타협이 단절된 채 극단으로 치달아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 명도 재고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희망퇴직ㆍ정리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 23명이 자살 심장마비 등으로 세상을 떠났고, 해고 노동자들은 4월부터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려 천막농성을 벌여왔다. 9월 국회 청문회가 쌍용차 문제 해결의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고,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는 새누리당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김정우 지부장은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19일까지 41일간 단식농성을 벌이다 병원에 실려갔다. 쌍용차지부는 "회계조작으로 인한 불법적 정리해고로 23명이 사망하고 41일간 단식을 해도 국정조사와 해고자 복직은 전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15만4,000볼트의 송전탑에 올랐다"고 밝혔다.
쌍용차뿐만이 아니다.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2명은 10월 17일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울산 현대차 공장 앞 송전탑에 올랐고, 경기 동두천시 대양운수 버스 기사 2명도 지난 14일 부당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동두천시청 옥상철탑 농성을 시작했다. 또 이날 경기 평택시의 한 목재 공장 노동자 2명도 근로시간 보장 등을 요구하며 50m 높이 구조물에 올라 농성에 돌입했다.
전문가들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이후 이처럼 극단적인 투쟁 방식이 반복되는 것은 노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사업장 내 민주주의가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영기 경기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2009년 쌍용차 문제가 처음 발생했을 때 금속노조나 민주노총과 같은 상급단체가 교섭력을 제대로 발휘하거나 사태 이후에 중간에서 타협을 이끌어 냈다면 상황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소수의 노동자가 극단적인 방법으로 요구를 관철시킬 것이 아니라 노조의 교섭력과 투쟁력으로 요구를 반영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근본적으로 노동자들이 회사의 경영사정을 알 수 있도록 해 정리해고도 노사가 조율할 수 있는 사업장 내 민주주의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 교수는 또 "정치권이 한진중공업 사태 이후 정리해고 등 사업장 내 민주주의를 위한 입법화를 추진하지 않아 극단적인 농성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하지만 대선 전에는 쌍용차 문제는 해결되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어차피 대선 정국에서 국정조사가 실시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단일후보로 결정된 야당 후보에게 문제 해결을 약속받고 차기 정권으로 넘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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