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한국어 초연!"혁명 깃발 같은 커다란 휘장을 극장밖에 걸어둔 뮤지컬 '레 미제라블'(사진). 첫 한국어 라이선스 버전으로 우리 뮤지컬의 경험 자산을 쌓아가고 있다. 용인 포은아트홀의 개관작답게, 200억원의 제작비가 이뤄낸 무대의 볼거리가 우선 눈길을 끈다.
이동식 회전 무대, 무대 바닥에서 천정까지 채우는 거대한 세트는 장관이다. 절도 있고 신속하게 작동, 서정적 야경을 매혹적으로 구현한다. 바닥에서 천정까지 닿는 거대한 세트의 움직임은 민활했다. 빈민가에서 서정적 야경으로 순식간에 변할 때는 아예 판타지다.
그러나 무대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국내 뮤지컬팬에게 제법 익숙해진, 물량 공세가 아니다. "드디어"라는 수식어를 동원시킨, ' 한국어 초연'이다. '미스 사이공'의 작곡자이기도 한 클로드 손버그의 선율이 우리나라 말의 호흡과 전혀 버성기지 않는다. 흔치 않은 경험이다. 이번에 대본 작업으로 참여한 작ㆍ연출가 조광화씨는 원작과 우리 무대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자로서 그 갈등의 실제적 조정자다.
"한국어 대본 작업은 한 달 걸렸어요. 오리지널 팀과의 7주 연습 동안 원 제작진의 요구에 따라 만족할 때까지, 6개월 간 연습실에서 무수히 수정해 나갔죠." 은근한 껄끄러움도 있었다.'한국인의 감수성에는 정중동이란 게 있잖아요? 그런데 그처럼 정적인 무대는 용납 못 하는 연출(로렌스 코너 등)의 요구 때문에 무대에서 계속 움직여야 하는 배우들이 힘들죠."
익명을 요구한 우리측 제작진의 말. "한국 음향팀 등 우리 제작진의 수정 건의에 대해서는 '절대 바꿀 수 없다'고 해 속상한 부분이 있다. 심지어 한국어 어감과 어긋나는 액센트까지 요구할 때는 난감했다."이번 무대가 오리지널이 아닌 투어 버전인데다, 그들도 내부적으로 계속 토의해 만들어 가는 판에 지나치다는 볼멘소리가 당연해 보일 정도다.
갖가지 사람들로 북적대는 모습(mob scene), 죄수들의 폭력적 일상, 역동적 전투 장면 등 생기 넘치는 볼거리 장면은 아리아와 듀엣 등 알려진 노래들을 싱싱하게 살려 놓는다. 원 캐스팅 원칙 아래 오리지널팀의 세부적 요구를 구현한 배우들이 최대 공신임은 물론이다. 25일까지 포은아트홀에서 펼쳐질 이 무대는 대구 계명아트홀, 부산 센텀시티 소향아트센터를 거쳐 내년 4월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오픈 런(무기한 공연)에 들어갈 예정이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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