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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의 길] 오케스트라에 담은 하드록··· 클래식의 이종격투장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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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음악의 길] 오케스트라에 담은 하드록··· 클래식의 이종격투장 꿈꾸다

입력
2012.11.2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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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제플린 'Dazed And…' 교향 악주법으로 해석한 '팝업'스승 진은숙 "실험의 정수""유치원 때부터 아버지가 바그너·헤비메탈·랩 들려줘내 창작법은 모방과 인용 문제는 질 좋은 음악"

전위를 표방하지 않는 한 현대음악(modern music) 혹은 동시대음악(contemporary music)은 이제 더 이상 불편한 존재가 아니다. 간혹 있는 일이지만, 어떤 현대음악 공연에서는 웬만한 스타들의 무대에 버금가는 열광까지 나타난다. 현대음악이라는 신형 거함은 성공적으로 접안한 것일까.

희소식은 보석들이 많다는 것이다. 현대음악이 좋아 재능의 절대치를 바친 젊은 그들에게서 고립된 전위가 아니라 소통을 향한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적어도 그들은 잊고 있기 십상인 본질적 문제를 일깨워 준다. 재능 받은 자들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새로움'이란 가치를.

22인조 클래식 오케스트라가 재현해 내는 레드 제플린의 명곡 'Dazed And Confused'를 상상할 수 있는가. 신동훈(29)의 신작 '팝업'. 광란적 하드록 음악을 클래식 악기의 독특한 주법으로 해석해 전혀 다른 음 구조물로 창조한 이 곡은 지난 1일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시리즈'진은숙의 아르스노바 Ⅲ'에서 초연됐다.

세계적 작곡가이면서 신씨의 음악적 스승인 진은숙씨는 이 곡을 "독특한 작품, 실험의 정수"라 요약했다. 수업을 할 때마다 송곳 같은 논리로 학생들에게 삶의 의지까지 곧잘 꺾어 놓던 진씨였음을 감안한다면 거의 극찬이다. 두 사람은 2006년 아르스노바 마스터클래스를 계기로 사제지간이 되었다.

신씨가 레드 제플린의 그 곡을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다. 어린 나이의 감성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음악이었으나 열광 팬이었던 아버지 덕이었다. 오케스트라를 거대한 전자기타로 간주한 '팝업'은 그렇게 둥지를 틀었다. 지미 페이지(기타)도, 존 보넘(드럼)도 그들의 음악이 이토록 확장ㆍ변형되리라고는 꿈도 못 꿨을 것이다.

넓은 세상과 조우한 것은 2010년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바이올린협주곡 'Kalon'을 통해서다. 스페인국립극장이 주최한 제 1회 국제작곡콩쿠르 우승작이었던 그 곡은 서울대 음대 3학년 때 지은 바이올린협주곡(단악장 12분)을 발전시킨 곡이었다. "나이 든 작곡가의 음악 같다, 너무 관습적이다"라며 스승 진씨는 또 채찍질했지만. "칭찬은 한 번도 없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만 했다."

음악의 정글을 헤쳐 온 그는 예술적 포식자가 되길 희망한다. 중 3 때 작가주의 감독 알모도바르의 영화에 심취했다는 그의 어릴 적 꿈은 작가였다. 톨스토이의 장편을 읽고 말러를 곧잘 연결지었다. 김기덕의 영화'피에타'도 훌륭한 작곡 소재라고 말한다.

"굳이 말하자면 제 창작법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말하는 모방과 인용이겠죠."

불연속적 편린들의 융합이란 점에서, 김애란의 소설과 체코의 신진 작곡가 옹드레 아다멕의 곡이 그에게는 유사하다. 역추적해 보니 그 기저에 부친인 신유식씨가 나타난다.

"유치원 다닐 때 아버지는 내게 바그너와 함께 헤비메탈, 신중현의 노래, 랩 배틀을 들려주셨죠."

상식을 비웃는 독특한 조합이다. 당시는 멋 모르고 들었지만 그것들이 현재 자신의 음악적 자양분이라고 확신한다. "아버지에게는 빚 졌다고 생각하죠." 카이스트 전자공학과 다닐 때부터 음악광이었던 부친은 그 상상력을 한국 최초의 공업용 로봇 설계로 실현시켰지만.

그의 길지 않은 삶의 시간은 음악의 이종(異種) 격투장이다. 중학교 다닐 때는 칙 코리어, 팻 메스니 등 진보적 재즈 뮤지션들의 음반을 내는 ECM 레이블에 심취했다. 고교 시절에는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년 내내 록 밴드에서 노래와 건반을 맡았다.

"클래식음악을 하니 자부심을 느낀다는 말은 웃기는 얘기죠. 문제는 '질 좋은' 음악이거든요."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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