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에서 전기를 만드는 데 쓰고 남은 우라늄과 플루토늄은 ‘다발’형태로 보관된다. 현재 국내 원전에 보관 중인 이 ‘사용 후 핵연료’는 6월 기준으로 36만8,000다발. 국내 총 저장용량(51만8,000다발)의 71%까지 육박해 있다. 매년 2.1%씩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방사성폐기물은 방사능 농도에 따라 중ㆍ저준위와 고준위 폐기물로 분류된다. 고준위 폐기물, 즉 사용 후 핵연료는 알파선 방출 핵종 농도가 4,000Bq/g 이상이거나 열 발생량이 2㎾/㎥ 이상으로 중ㆍ저준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특히 원자로에서 빼낸 뒤에도 오랜 시간 방사선과 붕괴열을 방출하는 만큼 더욱 철저하고 까다로운 관리가 요구된다.
통상 사용 후 핵연료의 처리방식은 ▦원전 수조 내 임시 저장 ▦중간저장 설치 ▦최종 처분 등 세가지가 있다. 미국 프랑스 일본 등 22개국은 현재 중간저장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핵폐기물을 완전히 격리시키기 위해 지하 500㎙ 밑으로 저장하는 ‘최종 처분(영구 저장)’ 방식은 핵연료 재활용 불가, 기술 및 부지확보 어려움 등으로 현재 운영하는 국가가 없다.
우리나라는 고리 월성 영광 등 각 원전 수조에 임시로 보관되어 있다. 한미 원자력협정상 재처리도 불가능한데, 2016년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2024년이 되면 수조가 꽉 차기 때문에 중간저장장소를 찾아야 할 형편이다.
문제는 결국 부지다. 원전에서 쓴 장갑 옷 같은 물품을 저장하는 중ㆍ저준위 폐기물 저장장소를 경주에 최종적으로 짓기까지 무려 20년이 걸렸다. 2005년 전북 부안에 방폐장이 들어서는 문제로 지역사회가 사분오열되고 유혈사태까지 빚어지기도 했다. 하물며 훨씬 더 치명적인 고준위 폐기물 처리장을 짓는 건 어느 지역이든 훨씬 더 심한 주민저항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한 원전 관계자는 “임시저장소가 꽉 차는 2024년까지 12년이나 남은 게 아니라 12년밖에 남지 않았다. 아무리 속도를 내도 빠듯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만약 차기 정부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부지선정에 실패하면 가동 중인 원전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벌써부터 사용 후 핵연료 처리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하면서 부지선정을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이 감지되고 있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 소속 민주당 김상희 의원이 최근 “전북 부안, 부산 기장, 강원 양양, 충남 서천 등 4곳이 사용 후 핵연료 처분시설 후보지로 조사ㆍ검토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히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 등 핵폐기물 중간저장시설 후보지로 거론된 4곳의 환경단체들은 잇따라 기자회견을 갖고 “사용 후 핵연료 처분에 대한 의견수렴절차도 없이 밀실에서 부지선정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이는 국민을 무시하고 죽음으로 내모는 행위”라며 정부를 강력히 규탄했다.
차기 정부의 원전정책도 변수다. 현 정부는 원전지지 정책을 펴면서도 이번에 고준위 방폐장 공론화 시기를 내년으로 정해 사실상 차기 정부로 공을 떠넘겼는데, 과연 새 정부가 원전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 지는 미지수다.
지경부 관계자는 “과거 경주 방폐장 부지선정을 교훈 삼아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사전단계부터 철저히 준비하겠다”면서 “지역주민들과 미래세대가 감수해야 하는 사회적 부담에 대해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지원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종한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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