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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강해지고 서민 삶은 팍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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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강해지고 서민 삶은 팍팍

입력
2012.11.2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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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오늘(1997년 11월 21일) 외환위기가 닥치기 이전 한국은 경제 규모가 일본의 8분의 1에도 못 미친 '중규모 폐쇄경제' 국가였다. 하지만 외견상 지표는 장밋빛이었다. 경제성장률은 9%를 넘나 들었고, 실업률은 2%대에 머물렀으며, 총 취업자(1,414만명)의 23.4%가 20대일 정도로 청년들은 직장을 얻기 쉬웠다. 대다수 국민들은 "열심히 일하면 내일이 오늘보다 낫고, 자녀 세대는 부모 세대보다 잘 살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문제는 우리 경제가 방만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면서 곳곳에 부실 징후가 나타났으나, 이를 제대로 눈치채지 못한 것이다. 투자에 몰두한 대기업들이 마구 잡이로 돈을 빌리는 바람에 부채비율은 무려 425%에 달했고, 은행들은 단기외채를 가져다 이자 놀이에 열중하면서 위기를 맞은 것이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리면서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빚으로 덩치를 키운 재벌들이 공중 분해됐고, 이들에게 수십 조원을 떼인 은행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살아남은 재벌들은 현금 확보에 주력했다. 정규직을 마구 해고하고, 일선 현장 인력은 비정규직만 뽑았다. 93만명의 실업자가 쏟아지며 97년 2.6%이던 실업률이 98년 7%로 치솟았다.

IMF의 개혁 방안은 총량적으로는 효과를 냈다. 97년 말 204억달러이던 외환보유액이 2012년 3,235억달러로 15배 이상 늘었고, GNI(2011년 1조1,195달러)도 2배 증가했다. 일본과의 격차도 4분의1 수준으로 감소했다. 삼성전자 주가가 97년 말 3만4,000원에서 현재 136만4,000원(20일 종가)으로 치솟은 데서 알 수 있듯, 일부 대기업은 세계 초일류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

그러나 위기 극복은 약자의 희생 위에 이뤄졌고, 그 여파는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계층간 소득불평등이 심화하면서 빈곤층 비율이 두 배(97년 8.7%→ 2011년 15%)로 늘었고, 잠재성장률은 외환위기 이전(6.1%)의 절반(3.7%) 수준으로 급락했다. 그 여파로 청년 백수가 100만명을 웃돌고, 전체 임금근로자(1,773만명) 중 3분의1(591만명)은 비정규직 신세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수석연구위원은 "18대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분배구조 개선과 성장률을 끌어올려야 하는 난제를 안게 됐다"고 말했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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