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군무는 없다. 빼어난 미모를 과시하지도 않는다. 흔히 말하는 '아이돌'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도 수주째 각종 가요 차트 상위권을 장식하고 있다. 여성 솔로 가수 이하이(16)와 에일리(본명 이예진ㆍ23) 이야기다.
올 상반기 SBS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뒤 YG엔터테인먼트에 발탁된 이하이는 지난달 29일 발표한 데뷔곡 '1,2,3,4'로 3주째 각종 음원 차트 정상을 달리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 발 앞서 올 초 데뷔곡 '헤븐'으로 가요 차트를 휩쓸었던 에일리는 지난달 발표한 미니앨범 수록곡 '보여줄게'로 한 달 가까이 차트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1,2,3,4'와 '보여줄게'는 빌보드 K팝 차트에서 2주 연속 각각 1, 2위를 차지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하이와 에일리는 벌써부터 연말 열리는 각종 가요 시상식의 신인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다.
두 가수가 인기를 얻는 이유는 무엇보다 뛰어난 가창력이다. 이하이는 'K팝스타'에서 실력을 검증 받았고, 에일리는 쟁쟁한 가수들의 경연장인 KBS 2TV '불후의 명곡2'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을 인정 받았다. 아이돌 그룹이 현란한 의상과 군무로 무대를 장악할 때 이들은 노래 하나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태규씨는 "두 여가수는 무대 위의 장악력이 남다르다"면서 "아이돌 그룹 위주의 흐름을 뒤집을 수 있을 만한 위력적인 콘텐츠를 지녔다"고 평가했다.
이들의 노래가 가요계의 주류인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에서 벗어난 것도 대중의 귀를 잡아 끄는 데 일조했다. 이하이는 'K팝스타'에 출연하던 당시부터 열여섯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원숙한 소울 창법으로 눈길을 끌었다. '1,2,3,4'는 그의 장기인 1960년대 풍의 레트로 소울 장르 곡으로 YG의 전속 작곡가인 초이스37과 리디아 백의 합작품이다.
'보여줄게'는 감성적인 발라드 보컬과 힘이 넘치는 R&B 창법을 동시에 지닌 에일리의 재능을 그대로 보여주는 곡이다. 발라드로 시작해 디스코 팝으로 바뀌는 극적인 구성이 시원스레 뻗어나가는 에일리의 창법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사랑비'의 작곡가 이현승과 휘성의 '위드 미', SG워너비의 '죄와 벌' 등을 작곡한 김도훈이 공동으로 선율을 썼다.
10, 20대에 치우치지 않은 고른 인기 덕에 이들의 음악은 오랫동안 차트 상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최근 음악서비스 사이트 벅스가 음원 다운로드 및 스트리밍 횟수를 기준으로 '1,2,3,4'를 들은 회원 비율을 조사한 결과 10, 20대가 36%, 30대가 31%, 40대가 24%였다. 30, 40대가 절반 이상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대중이 차별성 없는 아이돌 그룹들에 피로를 느끼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하이와 에일리는 단지 노래만 잘하는 가수여서가 아니라 남들과는 다른 감성과 목소리를 지녔기 때문에 더 주목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복고풍인 이하이와 에일리의 음악이 30, 40대의 향수를 자극한 것도 인기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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