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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착한 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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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착한 독점

입력
2012.11.2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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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시제에 다녀오느라 1년 만에 고향에 들렀다. 1973년에야 전기가 들어왔을 정도로 궁벽한 산골 모습은 많이 씻어졌지만, 손님을 반갑게 맞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삼종숙 내외분은 농사일로 거칠어진 손으로 덥석 조카를 반기며 서둘러 밥을 지었다. 도시에서는 귀한 것이라며 말려둔 마늘과 쥐눈이콩, 벌써 월동용으로 땅에 묻었던 무까지 꺼내어 건네 준다. 고향은 거기 잠들거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정 때문에 언제나 따뜻하고 포근하다.

■고향에 갈 때마다 꼭 들르는 식당이 있다. 충청도에서는 '올갱이', 고향에서는 '골뱅이'라고 부르는 민물다슬기에 배추와 부추를 곁들여 맑게 끓여낸 국으로 수십 년 동안 사랑을 받아온 집이다. 칼칼하고 시원한 맛에 끌려 전국 곳곳의 '올갱이국' '골뱅이국'을 먹어 보았지만 비교가 되지 않았다. 주말이면 등산객과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지만, 허름한 식당을 넓혀 돈을 더 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넉넉한 마음이 한결 같은 맛의 비결이다.

■최근 새롭게 떠오른 찹쌀떡 명소도 느낌이 비슷하다. 면 소재지의 작은 빵집이 빚는 일본식 찹쌀떡은 다른 곳보다 팥소의 당도를 낮춘 것이 전부인 듯한데도 한번 먹어 보면 쉬이 잊히질 않는다. 산에 오르기 전에 미리 주문부터 했는데도 겨우 20개 들이 세 통을, 그것도 돈을 미리 내고 오후 3시에 찾는 방식으로 살 수 있었다. 손 작업을 고집하는 부부의 체력 한계로 끝없이 밀리는 주문에 댈 길이 없다. 기계화 의향을 물어도 고개만 가로저었다.

■돌이켜 보니 일본의 오래된 맛 집이 다 그랬다. 날마다 줄이 길게 늘어서서 확장하면 금세 떼돈을 벌 것 같은데 10년, 20년이 지난 후 다시 가 봐도 그대로다. 먹고 살기 위한 일인 만큼 그저 먹고 살 만하면 그만이라는 마음가짐 때문이지만, 바로 옆에 비슷한 가게를 차리기 어려운 상 관행도 한몫을 한다. 좁은 시골 땅에서 그런 짓을 했다가는 온 동네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는다. 전통적 인간 관계만 살리면 '착한 독점'조차 가능함을 깨닫는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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