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여름이면 고향집 앞 농수로에는 반딧불이가 지천이었다. 한 시간쯤 손을 재게 놀리면 유리 음료수 병 하나 가득 반딧불이를 잡곤 했었다.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30, 40대들이라면 비슷한 기억들이 있을 터. 그런데 급격한 환경 변화로 수년 전부터는 좀체 반딧불이의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KBS 1TV가 21일 밤 10시에 방송하는 '환경스페셜-사랑의 불빛 반딧불이'는 1년간의 추적을 통해 촬영한 반딧불이의 일생을 공개한다.
농수로에 서식하는 애반딧불이의 유충은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반딧불이 가운데 유일하게 수중에서 생활한다. 다슬기나 물달팽이 등을 먹고 약 1㎝까지 자란다. 크기가 작아 애반딧불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밝기는 다른 반딧불이 못지 않다. 초당 1, 2회씩 쉴 새 없이 깜빡이며 늦은 밤까지 반짝이는 애반딧불이는 여름밤을 환하게 밝히는 지상의 별이다.
무더위가 한풀 꺾일 때쯤 뒤늦게 모습을 드러내는 늦반딧불이. 주로 계곡이 있는 풀숲에 서식하며 성충의 크기는 2~3㎝로 제법 크다. 이들이 빛을 내는 시간은 해진 후 1시간 정도로 매우 짧다. 발광 형태 또한 애반딧불이와 달리 거의 깜박임 없어 길게 반짝인다. 어둠이 내릴 무렵, 금세 불을 밝히고 사라지는 늦반딧불이는 숲에 밤을 알리는 수줍은 전령사다.
하지만 늘어나는 도시의 불빛과 매연, 제초제와 농약으로 반딧불이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남은 녀석들 또한 위협을 피해 점점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들고 있다. 환경의 질적 수준을 가늠하게 해주는 환경지표종인 반딧불이에게 닥친 생존의 위기는 곧 우리 환경이 병들어가고 있음을 알리는 적색경보다.
허정헌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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