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은 국내 최대그룹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지 25년 되는 날이다. 공식 취임은 1987년 12월1일이지만, 그룹 회장직을 실질적으로 물려받은 건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이 타계한 다음날인 1987년11월20일이다.
'이건희 체제 25년'을 거치며 삼성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와 혁신을 겪었다. 그 결과 '로컬 챔피온'에서 '글로벌 챔피온'으로 도약했다는 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우선 외형 자체가 몰라볼 만큼 커졌다. 1987년 9조9,000억원이던 매출은 올해 39배 늘어난 384조원에 이를 전망. 시가총액도 300배 이상 불어났다. 양적으로만 커진 것이 아니다. 인터브랜드 집계에 따르면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1999년 31억 달러로 등외(等外)였지만, 올해 세계 9위(328억 달러)로 상승했다. 반도체, 휴대폰, TV, 리튬전지, 드릴십 등 무려 19개 제품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병철의 삼성'과 '이건희의 삼성'을 구분 짓는 키워드는 혁신이다. '관리의 삼성'이란 말이 보여주듯 이전까지 삼성은 도전보다는 안정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취임 직후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발전시키겠다"며 제 2창업을 선언했고 1993년 그 유명한 '신경영'발표를 통해 냉혹한 체질 개선을 시작했다.
'이건희식 경영'의 출발점이 된 신경영은 한 비디오테이프가 발단이었다. 삼성전자 세탁기에서 덮개가 잘 닫히지 않는 문제가 발견됐는데 기술자들이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내용이었다. 충격을 받은 이 회장은 그룹 모든 경영진들을 프랑크푸르트로 소집, 열 시간이 넘는 마라톤회의를 가졌고 이 자리에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두 바꾸라"고 요구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신경영 선언 때만해도 삼성은 그저 국내 최대 기업이었다. 하지만 불과 10년 만에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고 뒤이어 난공불락처럼 여겼던 소니까지 제쳤다. 이 짧은 시기에 한 기업이 이렇게 도약한 건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하다"고 평했다.
25년간 영광과 전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07년 삼성 법무팀 출신 김용철 변호사의 내부고발로 오랫동안 감춰져 왔던 삼성내의 치부가 드러났다. 이 회장은 불법 비자금 조성, 경영권 불법승계, 조세포탈 등 혐의가 적용돼 불구속 입건됐고 2008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또 다른 재계관계자는 "이건희 회장 개인에겐 25년 경영기간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을 것"이라며 "하지만 삼성은 비자금사건을 통해 어두운 과거를 청산하고 글로벌 기업에 걸 맞는 투명경영을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본다면 약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2010년 경영일선에 복귀한 이 회장은 혁신의 강도를 더 높이고 있다. 한남동 자택경영을 끝내고 사옥에 정기 출근하고 있는 그는 "1등이라고 자만하면 미래는 없다"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과 제품은 대부분 사라질 것"이라며 특유의 위기경영론을 설파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외부에선 모르겠지만 사실상 지금 사내에선 혁명적인 '신경영 2.0'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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