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 단일화 논의 중단이 초래한 것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 단일화 논의 중단이 초래한 것

입력
2012.11.19 17:33
0 0

지난 14일 안철수 무소속 후보 측이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측과의 단일화 논의 중단을 선언한 직후 취재기자들 사이에서 만들어져 회자된 패러디가 있다. 단일화 중단을 놓고 갈등하는 두 후보의 입장을 말다툼하는 연인간 대화로 패러디한 짤막한 이야기다. '문: 사과할게. 내가 정말 잘못했어. 안: 내가 지금 미안하단 소리 들으려고 이러는 거 같아? 문: 내가 전부 잘못했어 안: 전부가 뭔데? 뭐뭐 잘못했는지 알아서 말해봐…' 이런 식이다. 실수를 한 것 같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하는 남자 친구를 여자 친구가 몰아붙이기만 할 뿐 잘못은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는 것이 이야기의 구조다. 두 후보가 18일 협상 재개에 합의하면서 이 패러디의 시의성도 함께 떨어졌지만 그냥 웃고 흘려버릴 평범한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진 않는다.

이 이야기를 들은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상황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며 박장대소했다. 그 웃음 뒤에는 안 후보 측이 협상 개시 하루 만에 단일화 논의를 중단하며 내세운 이유를 수긍하기 어렵고 안 후보 측의 요구가 매우 모호하다는 공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안 후보는 양측 간 갈등이 고조되던 16일 갑자기 기자회견을 자청해 "국민이 요구하고 민주당 내부에서 이미 제기되고 있는 당 혁신 과제들을 즉각 실천에 옮겨달라"고 요구했다. 안 후보가 민주당에 구체적인 요구를 할 거라고 기대했던 사람들은 그의 애매모호한 발언에 다시 실망했다.

스스로 "손해 볼 것을 감수하고" 논의를 중단한 안 후보가 이 패러디를 접했다면 섭섭했을 것이다. 그는 단일화의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정치 개혁을 위해 신사다우면서도 치열하게 경쟁하는 아름다운 모습의 단일화 과정 자체가 자신이 주장하는 새정치의 구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때문에 그는 단일화 협상이 시작되자마자 '안 후보 양보론' 등 소문을 퍼뜨리고, 조직을 동원하고, 지역감정을 자극하고, 상대방 협상 대표를 공격하는 '구태 정치'에 아연실색했을 것이다. 이런 형태의 단일화 논의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 더 늦기 전에 경기 중단의 호각을 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안 후보에 대해 '역시 아마추어'라고 평가하는 유권자들도 더 많아진 것 같다. 야권 후보 단일화는 본질적으로 대권 도전권을 놓고 벌이는 작은 전쟁인데 명운을 건 경쟁에서 신사협정이 지켜질거라 믿은 게 아마추어라는 것이다. 더구나 상대는 이미 권력을 잡아 봤던 노회한 정치세력이다. 그 세력과 게임을 시작한 '아마추어' 안 후보는 상대방의 '야유' 한마디에 '멘붕'(멘탈붕괴)을 일으켰다고 보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끝까지 민주당에 구체적 요구를 하지 않고도 이해찬 대표를 물러나게 하는 전과를 올린 안 후보가 '정치 9단이 울고 갈 정도'로 정치공학적이라는 평가도 들린다.

하지만 안 후보 개인의 득실을 떠나 이번 사태가 가져온 안타까운 후유증은 새 정치에 대한국민적 갈망을 상징하던 '안철수 바람'이 잦아드는 계기가 된 점이다. 공교롭게도 안 후보가 민주당 의원 30여명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이 함께 알려지면서 그의 새 정치에 의문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단일화 논의 중단 이후 그의 지지도가 하향 흐름을 보인 여론조사결과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

이번 사태는 야권 후보 단일화 논의로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기회를 줬다. 박 후보는 "민생 문제와 국민 고통 해결에 집중하는 새누리당이야말로 진짜 새 정치하는 정당 아니냐"고 공세를 펴고 있다. 자칫 새 정치를 놓고 '진짜 논쟁'이 벌어질 판이다.

문ㆍ안 두 후보 측의 협상 재개는 단일화 불발을 우려했던 유권자들에게는 다행한 일이다. 하지만 대선이 불과 29일 남았는데도 후보가 확정되지 않는 것은 누가 봐도 기형적이다. 두 후보가 의지를 재확인한 만큼 하루라도 빨리 단일 후보를 내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다.

김동국 정치부 차장 dk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