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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어놓을까, 말까"… 거리로 도피 전 '마지막 희망처'는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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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어놓을까, 말까"… 거리로 도피 전 '마지막 희망처'는 선생님

입력
2012.11.1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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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방황, 가장 먼저 알아

폭력·입시 등 절망 속에서도 다가온 선생님은 밀치지 않아

가출청소년 10명 중 4명은 "교사가 믿어주면 돌아갈 것"

교사 개인 아닌 학교차원 대책을

교사·학생 1대1 결연 등 멘토 프로그램 운영 필요

학교-지자체 연계 관리, 적극적으로 찾고 보호해야

3년 전 추운 겨울 어느 날 인천 인평자동차정보고의 윤모(45) 교사는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댄스학원 입구에서 하염없이 제자를 기다렸다. 제자 A(18)군이 2주 전 가출해 소식이 끊기자 "춤추는 걸 좋아해서 학원 가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A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댄스학원가에서 제자를 찾아 '잠복근무'를 하는 중이었다.

학원 입구에서 새벽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선생님을 제자는 밀치지 않았다. A군은 홀아버지를 섬에 남겨두고 고모집에서 생활하며 방황하고 있는 마음을 선생님에게 털어놓았다. 윤 교사는 A군에게 졸업생이나 교사 등과 1대1 결연을 맺는 멘토 프로그램 참여를 권유해 학교 생활 적응을 도왔고 A군은 마음을 다잡고 가출 생활을 끝냈다.

19년째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윤 교사가 지금까지 도와준 가출 제자들은 60여명에 이른다. 무조건 집으로 보내지는 않는다. 이혼과 가정폭력 등 가정 붕괴의 상처를 경험한 제자들의 경우, 집으로 보내는 게 최선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이 없는 제자를 직접 집에서 재운 적도 있고 가출청소년을 보호하는 청소년쉼터로 연결해준 적도 많다. 윤 교사 자신도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가출을 경험한 적이 있으며, 청소년기의 방황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것이 제자들과의 소통에 도움이 됐다.

그러나 입시경쟁에 내몰린 학교 현실에서 윤 교사처럼 제자를 잡아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면, 그 아이가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든 주목 받지 못한 채 내쳐지는 경우가 많다. 송정근(51) 목사 등이 5~6월 가출청소년 400여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출 전 '학교선생님이 나에게 관심이 많았다'는 답변은 43.3%로 절반에 못 미쳤다. '나만 미워했다' '무관심했다' '선생님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 실망했다'등이 총 33.8%였다.

가출청소년들은 학교에 하고 싶은 말로 "공부 잘하는 애랑 못하는 애랑 차별이 너무 심하다" "학교가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려 주지 않고 혼내고 야단만 치기 때문에 싫다"는 답변들을 적었다. 그래도 학교 선생님이 믿고 지지해 준다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반드시 돌아가겠다' (21.1%), '돌아갈 마음이 많이 있다' (19.1%)고 상당수가 답했다.

교사가 학생들의 모든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기는 물론 쉽지 않다. 가정폭력 등에 시달리는 청소년이라도 선뜻 교사에게 털어놓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는 학생의 문제가 가장 먼저 표면으로 드러나는 곳이다. 집에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거리로 뛰쳐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기대볼 수 있는 희망처이기도 하다. 그만큼 교사와 학교의 관심은 청소년들을 비행과 범죄로부터 차단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경기 안산에서 만난 강민서(20ㆍ가명)양은 중1 때부터 아버지에게 일어서지 못할 만큼 폭력에 시달렸지만 선생님에게 말하지 않았다. 강양은 "처음에는 선생님들도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다가 내가 아무 말도 안 하니까 안 물어보더라"며 "말해봤자 소용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 때 교사가 좀 더 집요하게 파고들어 강양을 쉼터 등에 연결해줬다면 중3 때부터 시작된 강양의 가출과 학업중단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서울의 한 공업고등학교의 조혜숙 교사는 "학생들을 제대로 알아야 학생들도 마음을 터놓는다"고 설명했다. 조 교사는 담임을 맡으면서 제자 중에 흡연자와 비흡연자, 가출경험이 있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 오토바이 타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모두 낱낱이 파악했다. 그리고 오토바이를 타더라도 아르바이트 때문에 타는지, 좋아서 타는지 이유까지 알아냈다. 조 교사는 "처음엔 오토바이 탄다고 하면 무조건 비행 청소년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배달 아르바이트를 위해 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아이들의 상황을 감안해서 꾸중도 하고 조언도 하니 매일 욕설을 하며 말을 듣지 않던 아이들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존중이 존중을 부른다"며 "교사들이 학생을 먼저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학생의 일탈을 막는 최우선 조건"이라고 덧붙였다.

조 교사가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자, 싸움을 잘하는 것으로 소문난 한 제자가 "조폭들에게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상담하러 온 적도 있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에서 살던 아이였다. 조 교사와 이야기 끝에 그 제자는 조폭의 길로 빠져들지 않았고, 자신이 하고 싶어했던 옷 장사를 시작해 성실히 살았다.

교사 개인이 아닌 학교 차원의 프로그램 운영도 필요하다. 가정폭력이나 부모의 방임, 생계난 등 가출이 우려되는 환경에 처한 청소년에 대해 체계적인 지원 매뉴얼을 갖고 복지시스템과 연계해 주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기지역 D중학교 장모 교사는 "학교폭력 대처매뉴얼은 수도 없이 많지만, 가출청소년을 위한 대처 매뉴얼은 본 적이 없다"며 "개인적으로 청소년쉼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는 교사들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전국 1만1,000여 개 초ㆍ중ㆍ고교 중에 자격증을 가진 정규 상담교사는 겨우 1,114명이고, 위기학생 관리를 주 임무로 삼는 교사는 드물다.

학업중단 청소년은 교육과학기술부, 가출청소년은 여성가족부로 관할이 이원화돼 있어 학교에 나오지 않은 청소년의 정보를 여성부나 지자체 등에 넘겨 지역사회에서 관리하는 시스템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는 것도 문제다. 교과부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동의 없이 명단 등을 넘겨줄 수 없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한번 놓쳐 버린 아이는 사회 안전망에서도 영영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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