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중학교 체육관 증축공사 현장. 높이 20m, 무게 50톤의 크레인 한 대가 엿가락처럼 휘어져 지붕이 채 만들어지지 않는 체육관 3층 작업장에 곤두박여 있다. 크레인 지지대 길이와 각도를 계산해 볼 때 이 크레인의 적정 화물 중량은 2.5톤. 오전 작업 중에 1.7톤짜리 철근을 들 때까지만 해도 크레인은 미동도 없이 순조롭게 움직였다. 하지만 철근이 아닌 5톤 안팎의 폐자재를 들자 크레인은 정적 중량의 2배나 나가는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밑에서 작업 중이던 건설 인부 조모(51)씨의 삶을 송두리째 덮쳐버렸다.
경찰과 현장에서 작업을 하던 인부, 크레인 기사(28)에 따르면 현장 소장이 원래 예정에 없던 폐자재 처리를 부탁했다. 크레인 기사는 '폐자재를 옮겨야 빨리 공사를 마감할 수 있다'는 소장의 말을 따랐다.
하지만 문제는 적정 중량이었다. 당시 크레인 기사는 크레인에 과부하가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들어 올려보니 계기판에 무게가 4톤 이상이 찍혀 3층 현장에서 있던 신호수에게 '너무 무거운 것 같다'고 말했지만, 신호수가 '방금 것과 차이가 없으니 계속하자'는 말에 작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해당 크레인 회사 대표는 "사실상 현장에서 현장소장이 지시하는 부분을 거절하거나 거부할 수 없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고 토로했지만 현장 소장은 "3층 증축 현장에 지붕을 세우기 위해 폐자재를 치워달라는 부탁을 했다. 작업이 급했다"고 해명했다.
두 딸을 둔 숨진 조씨는 가족부양을 위해 한 달 내내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가장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고교 졸업 후 빈병과 폐휴지를 팔며 생계를 유지했던 그는 넝마주이로는 집안을 일으키기 힘들어 20대부터 건설현장 일을 했다. 유족과 동료들은 "건설현장에서 지켜야 할 기본 수칙만 지켜졌더라도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이라며 분개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현장 소장과 작업 인부들을 불러 사고에 대한 과실 여부를 조사 중이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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