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에서 안개나 구름처럼 뿌연 대상은 원근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해요. 미술계 중심에 들어가고 싶지만 이방인으로 주변을 맴돌던 저의 파리 유학시절 모습이 이런 풍경과 닮은 듯했죠."
내달 9일까지 서울 안국동 사비나 미술관에서 '사이드스케이프(sidescape)'전을 여는 홍순명(53)씨가 10여 년간 흐릿하고 뿌연 주변 풍광을 그려온 이유다. 그의 오랜 연작 작업은 인터넷에 떠도는 보도사진 검색으로 시작된다. 보도사진은 전달하는 주제가 분명해 중심과 주변이 명확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항구에 들어선 배의 물그림자, 러시아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크렘린궁의 샹들리에, 국제자동차경주대회에서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일으키는 어마어마한 모래 바람이 화폭에 허상처럼 그려졌다.
회화 설치 영상 등 신작 100여 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에는 홍씨가 2008년부터 세계 문화 소외지역 아이들 300여 명과 함께 작업한 초상화 연작 '꿈꿀 권리'도 전시됐다. 한국의 다문화 가정 자녀, 체코의 집시 아이들, 미국 산타페 원주민들의 얼굴사진에 아이들이 각자 그려낸 아바타를 합성한 작품이다. 아이들이 꿈꾸는 모습 혹은 자신만의 영웅의 얼굴을 자유롭게 그려낸 분신 캐릭터가 아이들의 천진한 얼굴에 덧대어졌다. '꿈꿀 권리'연작은 지난달 체코 프라하 세인트 질 도미니칸 대성당에도 전시됐다. 반투명한 한지에 인쇄된 아이들 얼굴이 3m 높이 스테인드 글라스에 붙여져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전시기간 사비나 미술관에서는 작가가 초등학생 100여 명과 매주 주말 '꿈꿀 권리' 연작을 함께 작업한다. (02)736-4371.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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