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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흑인 대통령, 여성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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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흑인 대통령, 여성 대통령

입력
2012.11.1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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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은 이래저래 상징성이 컸다. 버락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 두 사람 중 누가 대선 후보가 되더라도 역사적 기념비를 세우는 일이었다. 결국 민주당은 오바마를 선택, 첫 흑인 대통령의 새 역사를 열었다. 다른 요인을 제쳐둔다면, 첫 여성 대통령보다 흑인 대통령의 상징성을 유권자들이 더 높게 인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유권자들이 오바마를 지지한 것은 '흑인 후보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조지 부시의 공화당 정권 8년 동안 미국이 경제적 도덕적으로 피폐한 나라가 됐다는 불만이 팽배한 것이 바탕이었다. 국가적 침체 속에 '희망과 변화'를 외친 오바마는 자신의 삶 자체로 신뢰와 기대를 안겼다. 강인한 의지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한 면모가 정치적 메시지와 잘 어울렸다. '흑인인데도 불구하고'오바마를 유권자들이 선택한 근본이다.

이런 시각에서는 오바마의 재선은 첫 당선보다 상징성이 크다. 2008년에는 정권의 실패와 유권자들의 변화 열망이 두드러졌기에 오바마의 피부색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대선에서는 4년 동안의 국정 성적표를 손에 든 채 강력한 도전자에 맞섰다. 따라서 흑인(93%) 히스패닉(71%) 아시아계(73%) 등의 소수 인종뿐 아니라 40% 가까운 백인 유권자가 오바마를 다시 지지, 인종적 편견을 넘어선 의미가 4년 전보다 크다는 평가다.

이런 과정에는 역시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가 큰 역할을 했다. 빈부 격차 확대와 잇단 해외 개입으로 여론과 사회가 극단으로 갈린 상황을 극복하고 '단합된 국민(United Nation)'을 이루자는 오바마의 줄기찬 호소가 다시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4년 전과 같은 열광은 줄었지만, 막연한 기대보다 구체적 정책을 통해 검증된 신뢰가 예상보다 굳건했다. 공화당의 롬니 후보가 애초 넘볼 수 없는 자산이었다.

여기서 우리 정치와 사회가 얻을 교훈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유권자들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 간다는 것이다. 부시 공화당 정권은 8년 동안 안팎으로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며 국민의 자존감, 애국적 자부심을 크게 훼손했다. 유권자들은 그 쓰라린 기억을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희망과 낙관과 관용 등의 여러 미덕과 이상에 기초한 위대한 합중국의 전통과 애국적 자부심을 되찾자는 오바마의 호소에 다시 귀를 기울였다.

이런 미국에 비해 우리 대선 경쟁은 갈등과 대립을 주된 전략으로 삼은 느낌이다. 박근혜 후보가 국민 통합을 이야기하자, 야권과 진보 언론은 대뜸 '독재자의 딸'다운 발상이라고 비난한다. 국민 통합은 유신시대와 같은 독재의 구호라는 괴상한 논리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독재 시대로 회귀할 것이라는 시대착오적 망발까지 서슴지 않는다. 국민 통합은 국가와 공동체의 이상과 가치와 목표를 널리 공유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현실의 구체적 정책을 다툴 일이지, 30여 년 전의 어두운 역사를 더듬는 것은 구태의연한 선거 책략일 뿐이다.

그렇다고 박근혜 진영의 '여성 대통령론'도 그리 신통하지는 않다. 여성 지도자는 흔히 부드럽고 너그럽고 타협적이고 평화적인 덕목과 이미지를 지닌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여성성의 미덕만으로 극단에 이른 우리 사회의 깊은 갈등과 대립을 해소 또는 완화시킬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박 후보가 여성이기 때문에 지지할 유권자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여성 대통령론'과 그를 둘러싼 천박하고 비열한 논란은 모두 한가하게 비친다.

박근혜에게 '독재자의 딸'은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부(負)의 유산이다. 그와 동시에 역사적 화해를 위한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여성 대통령론 보다, 화해와 통합을 더욱 성심껏 외쳐야 한다. 유권자들도 거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논설고문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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