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민주주의와 '선진사회'로의 '발전'의 길을 쉼 없이 걸어왔다. 또는 그래왔다고 믿고 싶었다. '발전'에 대한 믿음은 좌우를 막론한 한국인의 습벽이나 문화 같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문득 길을 가다 예기치 못한 큰 교통사고를 당하여 몸이 상하고 후유장애를 겪는 것처럼, 수십 년 '민주화'의 성과가 소모되고 퇴보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 좌측 깜박이를 켜고 계속 우회전만 했던 노무현정권 아래에서, 그리고 '도덕적으로 완벽'했던 위대한 이명박정권 하에서. 우리는 뼈저린 교훈을 배울 기회를 얻었다. 역사라는 수레가 어이 없이 후진할 수도 있고, 또 한국 민주주의가 '한방이면 훅 가는' 유리성 같은 것이라는 것을.
드디어 대통령의 임기가 두 자리 날 이하로 남았다 한다. 민폐 5년, 뒷걸음질 5년. 모두에게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정말 '힐링'이 필요하다고 인사를 건네고 싶은 심정이다. 대통령의 가족들이 줄줄이 범죄자 신세가 되고 청와대가 압수수색당하는 초유의 사태도 봤다. 임기가 끝나자마자 대통령 자신이 감옥에 갈 것이라 예측하는 사람들도 많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지난 5년간 대통령과 그 수하들은 대체 무엇을 하셨는가? 쥐뿔도 성과가 없는 것 같다. 남은 것은 거대한 부패 비리의 흔적과 증오뿐이다. 보수파가 잘 한다는 외교ㆍ안보의 면에서도 '국익'은 한참 후퇴했다. 이대통령의 독도ㆍ연평도 방문을 보면서는 오히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건 그들이 얼마나 생각이 가난하고 존재 자체가 비극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을 뿐이었다.
외려 학문적(?) 탐구심이 발동하고 차라리 측은지심마저 들려한다. 우리의 정치제도 자체가 크게 잘못된 것인가 묻고 싶은 생각도 든다. 이 정권의 실패는 비현실적으로 거대하기 때문이다. '단군 이래 최대 암군'이라는 도올 선생의 말이 그냥 너스레인 줄 알았다. 까칠한 풍자가들이나 네티즌들이 말하듯 이 정권은 '국가를 수익모델로 삼은' 금융사기단 같은 집단에 불과한 걸까? 또는 재벌의 하수인이거나 일본 우익의 X맨들인가? "절대 그러실 분들이 아닌데", 왜 절대 그러시고 만 것일까? 청와대 경호실이 내곡동 땅 매입에 개입된 사실은, 세계정치학계에 임상적 사례로서 특별 보고되어야 한다. 어떻게 소득 2만달러가 넘는 소위 'OECD선진국'에서 이런 미개하고 비루한 행태가 가능한지. 한국형 민주주의가 왜 배울만한 게 못 되는지.
이제 대부분의 시민들은 대통령과 그들의 수하가 뭘 하든 이미 관심을 끄고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될 듯하다. 이 정권은 박정희처럼 총칼로써가 아니라, 당당히 '합법적' 선거로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뒷걸음질 5년, 민폐 5년을 책임질 사람이 없다. 대선이라는 게임은 정말 좋은 핑계다. 선거에 이기기만 하면 그만인가. 객관적인 평가는 간 데 없고, 뻔히 남은 구악이 아무 책임도 없다는 듯 집권 연장을 소리치고 다닌다.
바라건대 특히 보수파를 자처하는 분들이 앞장서서 이 정권 하에서 저질러진 민폐와 퇴행에 대해 성찰하고 청산해주기 바란다. '보수'는 파렴치한 기득권자와 돈 밖에 모르는 자들의 총칭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한국 보수도 자기를 돌아볼 겨를이 없이 그저 각하처럼 돼 가는 것 아닌가. 진영논리의 피해자와 폐해는 단지 소위 '진보'만의 것은 아니다. '진보'도 문제지만, 보수의 수준이 높아져야 우리나라 전체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겠다. 계속 30% 넘는 사람들이 매일 신문재벌과 특권 집단의 사기술에 당하는 상태에 머무른다면, 그래서 보수가 업그레이드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나 평화 자체가 어렵다.
이 정권과 대통령께서는 자꾸 되묻게 한다. 지난 5년 우리는 정말 최악의 대통령과 최악의 통치를 경험한 것일까? 앞으로 더 나빠질 가능성은 없는가? 역사의 상상력과 함께 엄밀한 계측력이 필요한 것이다.
가장 냉엄한 방법으로 5년간의 부패와 실정에 대해 평가하고 청산해야할 것이다. 그래야 겨우 비틀거리며 역사 허무주의에서 일어나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을 듯하다. 5년의 고통과 교훈을 잊지 말자. 물론 모두에게 필요한 속 깊은 성찰은 별도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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