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1월 20일 오후 3시 서울 남산 중턱에 자리한 주공외인아파트 2개 동이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와르르 무너졌다. 서울시가 벌인 '남산 제 모습 찾기' 사업의 하나로 추진되던 외인아파트 철거작업이 다이너마이트를 이용한 발파공법으로 해체된 것이다. TV중계를 통해 이 모습을 지켜보던 수많은 시민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5,000여평의 대지에 연건평 1만8,000평 규모의 남산 외인아파트 2개 동은 2,400개의 구멍에 설치된 다이너마이트가 50여 차례에 걸쳐 연쇄 폭발하면서 불과 10초 만에 완전 해체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경제개발계획이 한창이던 60년대 후반, 선진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많은 외국인들을 초청했다. 이들 외국 기술자들은 경제발전에 꼭 필요한 존재였고 최고의 대우를 해줘야 했다. 이들을 위한 음식과 옷은 수입을 통해 조달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살 집이었다. 짧게 머무는 외국인 사업가들은 시내에 위치한 조선호텔과 도큐호텔 등에 묵었지만 장기 체류하는 대사관 직원과 상사주재원의 살 곳을 해결하려면 외국인 전용 공동주택을 건설해야만 했다. 외인아파트는 이 같은 목적으로 등장했다.
72년 각각 16, 17층 높이로 지어진 남산 외인아파트는 국내에서 처음 지어진 고층아파트로 아파트문화를 선도했으며 기초공사부터 완공까지 완벽에 가까우리 만큼 튼튼하게 지어졌다.
하지만 80년대 들어 많은 시민들이 남산의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했고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로 들어오면 조망을 해치며 곧바로 눈에 띄는 아파트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88년 고 건 시장이 임명되면서 남산 제 모습 찾기 계획이 수립됐고, 사업 핵심은 외인아파트 철거와 옛 중앙정보부 및 수도방위사령부 이전이었다. 사업의 진행으로 91년 3월 수방사가 서울과 경기 과천의 경계인 남태령으로 이전했고 이 자리에는 조선시대 남산골 모습을 재현한 한옥마을이 조성됐다.
당시'남산'하면 떠오르는 국민들의 공포는 국가안전기획부로 이름을 바꾼 중앙정보부가 남산에 있기 때문이었다. 91년 안기부로부터 이 건물을 사들인 서울시는 본관 일부를 공원녹지국 등이 사용하고 있고 나머지 건물들은 교통방송과 유스호스텔로 바뀌었다.
건축 22년 만에 폭파 공법으로 순식간에 사라진 남산 외인아파트 자리에는 아름다운 식물원이 생겨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서울 시민의 벗 남산이 흉물스런 과거의 아픔과 유산을 벗고 아름다운 생태를 온전히 되찾으면 좋겠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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