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사색의 향기] 냅킨 한 장의 단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사색의 향기] 냅킨 한 장의 단상

입력
2012.11.19 11:40
0 0

얼마 전, 한 원로 사진가와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작은 이태리음식점에서였다. 음식을 내온 청년이 여러 장의 냅킨을 같이 주자, 사진가는 그 중에서 꼭 한 장만을 집어 음식 접시 옆에 두었다. 그리고는 필요할 때마다 냅킨의 여러 면을 고루 재사용 했다. 물자 부족한 옛 시절을 살아온 분이라 남의 물건인데도 저리 알뜰히 쓰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쳐다보는 눈길을 의식하셨던지 '대수롭지는 않지만 스스로 한 약속이 있어서, 어디서나 꼭 한 장만 쓴다'고 했다.

냅킨도 냅킨이지만 공중화장실에서 손을 씻은 후 종이타올을 지나치게 여러 장 뽑아 쓰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언짢아진다면서, 생각난 듯 모 출판사 대표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언젠가 한 식사 모임에 나갔다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에 들렀는데, 그 출판사 대표가 종이타올로 손의 물기를 닦고는 그것을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더라는 것이다. 그때 출판사 대표도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의식하게 됐던지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꼭 어디엔가 한 번 더 쓸 일이 있더라' 며 겸연쩍게 웃음을 지었다 한다. 사용한 젖은 종이타올을 양복주머니에 넣은 분은, 전통문화와 예술 서적을 출판하는 역사 오랜 출판사의 대표로 출판계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에도 안과 겉이 두루 멋쟁이로 소문난 분이다. 원로 사진가는 '나보다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뒤로 그 분 앞에서는 무슨 일로든 안 까분다'고 농을 잇대셨다.

편하자고 만든 게 일회용인데, 마음 한 켠을 불편하게 하는 게 또 일회용이다.

수년 전, 류가헌의 개관을 앞두고 가졌던 몇 가지 고민 중에도 일회용품에 관한 것이 있었다. 전시장은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니, 조금 부주의하면 일회용품의 사용량이 제법 될 터였다. 특히 전시 오프닝에 사용되는 식기류와, 화장실에서 손을 씻은 후 사용하는 종이타올이 고민이었다.

일반적으로 전시 오프닝 행사에는, 일회용 접시와 컵, 나무젓가락 등이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누군가의 전시 오프닝에 갈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사용은 하지만, 그것들이 쓰레기통에 가득 쌓이는 것을 보면 '지구를 위해서는 인류가 없는 게 낫다'는 환경관련 책의 격한 문구도 떠오르곤 했었다.

류가헌을 오픈할 때, 필요한 게 없느냐며 물어오는 주변의 지인들이 많았다. 개업이나 집들이 선물로 받은 것 가운데 용도나 취향이 맞지 않아 먼지만 쌓여가다 결국 버리게 된 경험들이 저마다 있을 것이다.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유용하게 쓰일 게 무엇일까를 제법 오래 궁리했다. 그리고는, 잘 깨지지 않는다는 모 브랜드의 '접시 세 장씩'이라고 답을 했다. 신기하게도 사온 사람마다 무늬가 다른 접시 80여 개가 그때 모였다. 고급스런 도자기류는 아니지만 일회용 접시보다는 사용감이 나았고, 또 깨끗이 씻어 볕 좋은 날이면 햇볕소독도 하니 위생적이기도 했다. 개관식 때는 물론이고 일 년이면 수십 여 회가 열리는 전시 오프닝 때마다 두고두고 사용 중이다. 지금 류가헌에 있는 물건 가운데 제일 아끼는 게 무엇이냐고 누가 물어온다면, 바로 그 접시들이라고 답을 할 것이다. 축하하는 마음들이 둥글게 모여 쌓인.

화장실에 종이타올도 준비하지 않았다. 대신 빨아서 쓸 수 있는 작은 손수건들을 마련했고, 지금껏 지켜가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꼴로는 집에 가져가 세탁을 해야 하니 수고롭기는 하다. 세탁을 위해 물이며 세제, 전기를 쓰니 환경적으로 계산할 때 이것이 더 나은 지도 분명치 않다. 다만 류가헌 화장실에는 함부로 쓰고 버린 종이타올이 휴지통에 넘쳐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정성스레 개어 둔 손수건을 쓰기 아까워서 안 썼다는 관람객들도 있는 것을 보면, '낭비'를 줄인 것만은 사실로 보인다.

이제 무심코 새 냅킨을 집어 들려고 할 때마다, 그날 점심을 함께 했던 원로 사진가 분의 얼굴이 떠오른다. '한수 위'인 출판사 대표도 떠올라 멈칫하게 된다. 잘된 일이다.

박미경 갤러리 류가헌 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