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기고] 곡물가 파동과 포스트 칩푸드 시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기고] 곡물가 파동과 포스트 칩푸드 시대

입력
2012.11.19 04:04
0 0

문완기

미국 서던일리노이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지난 여름 전세계 곡창 가운데 하나인 미국 중서부 지방이 극심한 가뭄 피해를 겪으면서 그 여파가 국제 곡물가 폭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3개월간 국제 곡물시장에서 밀은 47.3%, 옥수수는 34.2% 값이 올랐다. 내년에는 2007, 2008년의 곡물 파동을 능가하는 식량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식량 자급률이 22.6%에 불과한 한국으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당장 식량 수급 문제로 발등이 뜨겁다 하더라도, 식량 안보에 관한 한 시간을 갖고 근원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장기적인 전략 마련의 필요성은 이른바 ‘칩 푸드 (cheap food)’ 시대의 종말과 맞닿아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곡물 수입국들은 대체로 안정적이고 값싸게 농산물을 구할 수 있었다. 개발도상국에서의 녹색혁명과 선진국에서의 급속한 농업기술 개발 및 대규모의 농업지원ㆍ보호 정책이 크게 작용한 덕택이었다. ‘칩푸드 시대’는 저렴한 곡물가를 유지하는 데 큰 기여를 했고 전후 세계경제가 제조업 분야의 확대를 통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칩푸드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2000년대 들어 곡물 값이 상승하더니 2007, 2008년에는 세계경제가 글로벌 곡물 파동까지 겪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신흥강대국(BRICS)을 비롯한 비서구권 국가들의 경제성장에 따라 곡물 수요 증가를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곡물 생산에 필요한 토양과 수자원의 공급이 곡물 수요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칩푸드 시대의 끝을 앞당기고 있다.

값싼 농산물 시대의 종언은 농업 선진국들의 보호 무역정책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런 전망은 그간의 세계농업 질서 형성의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차 대전 이후 세계농업질서는 미국과 유럽의 보호무역정책으로 요약된다. 농업예외주의로 알려진 농업보호무역주의는 1800년대 영국의 곡물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됐고, 194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 성립 당시 미국의 요구로 자유무역구도에서 농업이 제외되면서 구체화 됐다. 이후에도 농업에 대한 보호주의는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정교해졌다.

‘우루과이 라운드’는 이 같은 농업보호무역주의에 제동을 걸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경제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듯 무역에 참여하는 모든 국가에 자유무역의 혜택이 돌아가기를 바라는 취지보다는 과잉생산의 처분, 늘어나는 재정부담을 해결하기 위한 미국과 유럽의 궁여지책이었다. ‘도하라운드’ 등 거듭된 농업협상 실패에서 보듯 세계경제질서를 주도해온 미국과 유럽은 애초부터 식량생산을 자연적인 비교우위에 맡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또한 이제는 신흥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도 식량안보 차원에서 곡물생산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국제농업관계는 제조업과는 달리 비교우위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각국의 식량안보 차원에서 형성돼 온 것이다. 가능한 많은 양의 곡물을 생산해 타국에 대한 식량 의존도를 최소화하는 것이 각국의 기본적인 전략이고, 포스트 칩푸드 시대의 도래는 이러한 전략을 훨씬 더 강화할 것이다.

이 같은 현실은 국가간의 경제적 경쟁관계가 계속되는 한 그리고 글로벌공동체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중장기 농업ㆍ무역 정책을 수립하고 지역적 혹은 양자간 FTA를 추진할 때 이러한 국제농업질서의 실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반영해야 할 것이다. 무역개방협상은 경제적인 이해득실뿐만 아니라 정치적, 국제관계적, 안보적 요소도 다분히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군사 안보의 확립과 경제 발전이라는 절박한 국가적 과제 때문에 농업 문제를 오랫동안 등한시해 왔다. 하지만 이젠 국가적인 식량 안보 차원에서 농업문제에 대한 체계적이고 현실적인 전략 수립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