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집 불리기'를 거듭해온 대기업들이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경기불황, 대내적으로는 경제민주화 압박이 거세지면서 이젠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삼성 SK LG 등 그룹들은 비주력 또는 중복사업에 대한 정리 및 합병을 통해 최대 10개까지 계열사를 줄일 방침이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현재 80개에 이르는 계열사 가운데 중복 또는 사양사업 4개사를 정리한다. 삼성전자는 광케이블을 만들던 삼성광통신을 다음달 4일 합병하며, 삼성전자 자회사 가운데 반도체ㆍ디스플레이 장비를 만드는 세메스는 세크론과 지이에스를 내년 1월 통합한다. 삼성SDI는 보쉬와 합작 설립한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SB리모티브의 보쉬측 지분 50%를 9월에 전량 인수하면서 내년 1월 합병한다.
SK도 비핵심 사업을 정리해 계열사를 96개에서 91개로 줄인다. SK는 SK네트웍스인터넷을 SK네트웍스서비스에, SK하이닉스 자회사인 하이로지텍과 하이닉스인재개발원을 하이스텍에 각각 합병했다. SK브로드밴드는 연말까지 고객관리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CS를 합병할 계획이다.
LG 역시 64개 계열사 가운데 연말까지 적자 및 중복사업체 6,7개사를 줄인다. 우선 LG상사는 적자기업인 디지털유통업체 픽스딕스, 와인 수입 및 유통업체 트윈와인과 지오바인을 청산한다. 광고기획사인 HS애드와 사업이 겹치는 옥외광고업체 지아웃도어와 벅스컴애드도 연말까지 정리할 예정이다. LG 관계자는 "예전에 인수한 업체에 딸려온 중복사업 업체들을 이번에 정리한다"며 "사업역량을 집중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롯데도 내수 시장이 위축되면서 사업간 연계 효과를 높이기 위해 유사 업종을 합치고 있다. 롯데쇼핑과 롯데삼강이 내년 1월 롯데미도파와 롯데햄을 각각 흡수하고, 호남석유화학은 다음달 말 케이피케미칼과 합병한다. 이렇게 되면 롯데는 계열사가 75개에서 내년 초 72개로 3개 줄어든다.
계열사를 가장 많이 줄이는 곳은 포스코다. 70여개 계열사를 주력 사업 위주로 합쳐 60여개로 축소한다는 방침이다. 이달 말 포스코에너지가 포항연료전지발전과 신안에너지를 흡수 합병하고, 스테인레스 코일 판매사인 포스코AST는 포스코NST를 내년 1월 합병한다. 또 비주력사인 보험업체 포스케이트인슈어, 광고대행사 포레카, 소모성자재구매업체 업체 엔투비 등 비주력 사업체를 분리할 계획이다.
STX도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STX메탈과 STX중공업 합병을 결정했으며, CJ는 택배업체인 CJ GLS와 대한통운을 내년 1분기 중 합칠 계획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과거엔 분사 등 아웃소싱이 대세였다면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는 지금은 거꾸로 계열사를 안으로 가져오는 인소싱이 큰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며 "그래야 사업변경이나 비용절감이 쉽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기불황에 대응하기 위한 이런 체질개선 차원 외에, 최근 정치권을 중심으로 거세지고 있는 경제민주화 압박도 기업들의 몸집 줄이기를 촉발시킨 요인이다. 한 재계관계자는 "계열사가 늘어나면 사업내용과 관계없이 문어발 확장으로 오해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며 "때문에 매각이든 청산이든 합병이든 어떻게든 계열사를 줄여보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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