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증권은 최근 서울 서초동 부티크모나코지점의 문을 닫았다. 2008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까지 나서 국내 최초 여성 특화지점을 표방하며 집중 투자했지만 결국 장기 침체를 견디지 못했다. 지점이 들어선 건물 일부가 경매에 들어가 이전이 불가피하다는 게 현대증권 측의 설명이지만, 비싼 임대료에 장사는 안돼 그간 쌓인 거액의 적자를 다른 지점으로 떠넘겨왔다는 후문이다.
글로벌 불황과 주식 거래량 급감 등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증권업계가 위기 탈출구가 될 새로운 영업방식을 찾느라 부심하고 있다. 증권사들의 궁극적 이상은 골드만삭스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IB). 하지만 그에 앞서, 우리보다 먼저 장기 침체의 긴 터널을 헤쳐 나온 일본 증권사들의 생존전략을 눈 여겨 보는 움직임이 늘고 있다. 자산관리로 내실을 다진 일본 모델을 거쳐 미국식 대형 IB로 나아가자는 이른바 '징검다리' 전략이다.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 당시 일본 증권업계의 상황은 요즘 우리와 비슷했다. 전체 수익의 절반을 넘던 위탁매매 수수료가 급감하고, 저금리 기조와 구조조정, 인수ㆍ합병 바람 등이 잇따라 불어 닥쳤다.
일본 증권사들이 택한 전략은 몸집에 따라 달랐다. 노무라, 다이와, 닛코 등 대형 증권사는 투자신탁이나 자산종합관리계좌 등의 업무를 통해 수익을 높이는 자산관리 모델을 도입했다. 이 같은 변화에 동참하지 않은 야마이치증권은 결국 파산했다. 자산관리 수익 비중이 현재 일본 증권사의 절반 수준(국내 5개 대형 증권사 평균 5.3%)에 그치는 우리 입장에선 아직 늘릴 여지가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SBI, 마쓰이증권, 카부닷컴 등 일본의 중소형 증권사는 온라인 증권사로 거듭났다. 개인의 온라인 주식매매 확대 움직임을 주목하면서 은행과의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판매채널을 계속 늘려갔다.
국내 업체들은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황성호 우리투자증권 사장은 8월 말 일본을 다녀온 뒤 일본 증권산업에 대한 분석 및 대비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대우증권은 홍성국 리서치센터장 주도로 일본 사례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얼마 전엔 300페이지짜리 장기복합 불황에 관한 기획 리포트를 냈는데, 핵심 내용은 일본이다. 한국투자증권도 일본의 자산 버블 생성과 붕괴과정 등을 분석해 '국화와 칼의 교훈'이라는 글로벌 전략보고서를 냈다. 유진투자증권은 일본 증권업계 인사를 초청해 세미나를 열었다.
다만, 방식보다 중요한 건 내용이다. 일본식 자산관리 모델을 도입하더라도 증권사를 외면하는 고객을 끌어 모으려면 다양한 콘텐츠(상품) 개발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와타나베 부인이 글로벌 자산시장을 주무르는 건 일본 증권사들이 다양한 해외상품을 개발한 덕"이라며 "상품 설계 능력과 수익률에 대한 고객의 신뢰를 확보하는 작업도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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