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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일본이 '체인지' 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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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일본이 '체인지' 해야 할 것

입력
2012.11.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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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일본에서 '체인지'라는 정치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에서 시골 초등학교 교사인 30대 중반의 남자 주인공은 여당 중의원 의원인 아버지가 갑자기 숨지자 아버지의 지역구에 출마해 의원 배지를 단다. 지역구를 물려받은 주인공은 얼굴이 잘생긴 총각이어서 대중적 인기도 올라갔다.

현직 총리의 실정으로 지지도가 급락한 여당의 중진 의원들은 몇 달 뒤로 다가온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치 경험이 일천한 주인공을 총리로 추대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장관을 해임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야당에 협조를 구하는 등 초당적 정치로 국민의 신임을 얻는다.

중진 의원들은 '선거의 얼굴' 정도로 생각하고 내세웠던 총리가 예상외의 정치력을 발휘하자 자신들의 입지에 위기를 느낀 나머지 총리의 아버지가 과거 정치자금을 수수했다고 폭로하고 주인공을 총리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는 음모를 꾸민다. 하지만 주인공은 TV에 나와 "아버지를 비롯해 과거 깨끗하지 못했던 정치를 국민이 재심판해 달라"며 중의원 해산을 선언, 중진 의원들을 정계에서 물러나도록 한다. 드라마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드라마라는 게 현실의 극단적 현상을 강조하는 측면이 있지만 최근 일본의 정치 상황을 보면 드라마 '체인지'와 흡사한 장면이 너무 많다. 16일 중의원이 해산돼 내달 16일 총선을 앞둔 일본에서는 이번에도 세습 정치인이 여럿 나올 전망이다. 자민당에서는 고령 정치인 4, 5명이 은퇴하는 대신 자신의 아들들을 대리 출마시키기로 했다. 세습정치의 병폐를 반대해온 민주당만이 이를 거부하겠다고 했다.

총선 승리를 위해 인기 정치인을 총리로 내세우려는 시도도 실제 일어난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의 지지도가 급락하자 민주당 내에서는 노다 총리를 대신해 40대 초반의 호소노 고시(細野豪志) 민주당 정조회장을 총리로 내세우려 했다. 호소노가 뛰어난 언변에 출중한 외모로 여성에게 특히 인기가 있다는 점을 의식한 것이다. 호소노는 원전담당장관으로 도호쿠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수습하며 대중적 지지도를 높였지만 총리를 맡을 만한 그릇은 아니라는 게 정치권의 평가였다. 이런 분위기를 잘 아는 듯 호소노는 9월 민주당 대표 경선 때 출마하지 않았다.

노다 총리가 14일 중의원 해산을 깜짝 발표한 것도 드라마와 흡사하다. 민주당 중진 의원들은 노다 총리가 소비세 증세 등을 추진하기 위해 당내 반대를 무시한 채 야당과 손을 잡고 중의원을 해산하려 한다며 물밑에서 그를 끌어내리려 했다. 이를 눈치챈 노다 총리는 중의원 회의가 TV로 생방송되는 가운데 중의원 해산을 선언, 민주당 반대파의 쿠데타 시도를 무력화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로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총리가 일본에서 선거의 얼굴로 전락한 것이 하루 이틀 이야기는 아니다. 현재 유력한 차기 총리로 점쳐지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 역시 이런 기준에서 본다면 예외가 아니다. 자민당 의원들이 한물간 정치인 아베 카드를 다시 꺼내든 것은 보수세력의 지지를 얻어 차기 총선에서 의원 배지를 달기 위해서다. 향후 정치적 상황에 따라 아베 총재 역시 일회용 구원투수로 마운드를 내려와야 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는 한 일본 정치의 신뢰는 추락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체인지'해야 할 것은 일본의 총리가 아니라 일본의 정치적 시스템이라는 것을 일본 정치인은 빨리 깨달아야 한다.

도쿄=한창만 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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