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가 남긴 16개의 알록달록한 색실은 반 고흐 미술관이 소장한 그의 유품이다. 반 고흐는 두 개의 실타래를 나란히 놓고 보거나 서로 다른 색실을 감아 색의 조합을 연구했다. 이 같은 색상에 대한 강한 집념에도 불구하고 반 고흐의 작품 중 일부는 본래의 빛깔을 빠르게 잃어가고 있다.
마분지에 그린 자화상은 탈색의 정도가 특히 심각하다. 1886년 3월~1888년 2월, 만 2년 머문 파리에서 반 고흐는 마분지 또는 이미 사용한 캔버스 위에 27점의 자화상을 그렸다. 그의 궁핍한 사정은 사용한 물감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당시 배경에 코치닐(적갈색 안료)과 파란색을 혼합한 투명한 보라색을 칠했지만 현재 코치닐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빛에 상당히 약한 값싼 재료인 탓이다. 그즈음 쓴 편지에서 반 고흐 역시 물감의 지속성을 염려했지만 물감을 바로 교체할 형편이 못되었다.
이 자화상의 얼굴 주변에는 파란색 물감만 점점이 찍혀있다. 당초에는 화려한 색칠이 있었지만 증발되면서 현재는 파란 색만 남아있다. "언젠가 내 그림이 물감보다 비싸게 팔릴 날이 올 것"이라며 스스로 위로했던 반 고흐의 인간적 고뇌와 형형한 눈빛만은 다행스럽게도 아직 살아있다. 2013년 3월 24일까지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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